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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이다.

  바야흐로 진정한 가을의 계절이 다가왔다. 기온이 많이 낮아졌다. 이제 런닝 뒤에 잠시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 볼라치면 땀이 식어 금새 추워진다. 하얀색 재킷은 꼴에 여름용이라고 입어도 춥다. 얇은 옷감 사이로 냉기가 살짝 돈다. 저녁에 있었던 크라잉넛 공연도 나중에 있을 후회를 무릅쓰고 나가지 않았다. 공연장이 너무 쌀쌀했기 때문이다. 아마 광장을 가득 매운 의자가 반도 채워지지 못한 이유는 날씨 때문이 아닐까.

  이런 날이면 사람들은 방에서 무얼 할까. 따뜻하게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들 웃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듯하다. 다들 지성 있는 대학생이라지만 결국 하는 행동은 아직 철부지다. 게임에 미쳐있고 티비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제 딴에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학과 공부와 영어 공부밖에 없다. 그것도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오는 열정이 아니라 단지 스펙 쌓기를 위함이라. 이렇게 그들을 우습게보고 있는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말이다.

  그네들만의 생산적인 일인 공부를 제쳐두고 나는 오롯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읽었다. 인터넷이 안 되던 지난 주말만 해도 계속해서 끊기는 테더링 서비스를 뒤로 하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다시 인터넷이 연결되니 노트북은 티비만큼 바보상자가 되었다. 9월 막바지에 들어 책을 많이 읽었지만 별 내실은 없다. 시집도 읽다 만 것들이고 상상력 사전도 읽고 싶은 주제만 대충 읽었다.

  9월의 독서 목록을 보자니 인문서가 쏙 빠졌다. 5월 이후 한 달에 두 권의 인문서 읽기를 작은 목표로 세웠었다. 그 다짐이 2개월 정도 이따가 무너졌다. 7, 8월이야 인턴생활을 한다고 나름 바쁜 시기였다지만 이번 9월은 전혀 바쁘지 않았다. 물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있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이 종이가 아니라 LCD였다는 게 문제지.

  바뀌어버린 생활패턴을 바꾸자고 또 다짐했다. 바꾼 지 하루 만에 다시 예전의 패턴으로 돌아와버린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보다. 매일 밤늦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든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는 책을 보다 늦게 잠을 잤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만 던진다. 남을 속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는 남이 나에 대해 좋게 알아도 내게 돌아오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다니. 구차한 자기변명 뒤에 밀려오는 씁쓸함은 마치 자위행위 뒤의 허무함과 같다.

  그래서 내일, 10월이 시작되는 오늘부터는 조금이나마 규칙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뭐뭐 하기러 했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건, 이런 말을 한 뒤에는 항상 그 약속이 깨지기 때문이다. 한 번 그러니까 다음에 또 그러고 그 다음, 그 다음, 계속 이어진다. 변명이 너무 습관화가 되었나보다.

  그 일환으로 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집에 가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도 먹을 수 있고 자기 절제가 어느 정도 돌아오기도 한다. 자유시간도 많고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다. 하지만 그곳엔 고난이 없다. 나만의 공간, 나만을 위하고 바라는 공간이다. 불편함이 없는 곳에서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흰 종이 위의 검은 지식을, 불편함을 참으며 보련다. 이게 나만의 벌이고 수행이다.

  책읽기와 더불어 글쓰기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틀 새 읽은 글쓰기 책들을 떠올려보았다. 특히 나탈리 골드버그의 조언은 내게 절대적이다. 쉬지 않고 써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리고 아무리 일기라지만 절대 잡글을 쓰지 않고 앞과 조금이라도 이어지게 써보아라. 상당히 상충되는 두 저자의 주장이지만 나름대로 내게 맡는 방법을 취하고 만들어야겠지. 언제까지 남의 글쓰기 방법에 욕심낼 순 없다.

  그런 일환으로 김훈 작가의 책을 필사하려고 한다. 사실 김훈의 책은 정말 읽기 힘들다. 문장의 꾸밈이 적고 맺고 끊음이 칼 같다. 잔인할 정도이다. 이런 문장을 쓰고 싶으면서도 이렇게 쓰인 책을 읽지 않았다니 배우는 사람으로서 자세가 잘못 됐다. 얼른 견인 도시 연대기 읽기를 마치고 <남한산성>을 읽으려 한다. 펜이 아니라 키보드로 필사를 하지만 전연 도움이 안 되지는 않을 테다. 글자만 쓰는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 단어 하나하나를 곰곰이 되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건 변명인데 우리 기숙사 방은 글을 쓰기에는 그리 좋지 못하다. 우선 의자가 딱딱하고 공기도 탁하며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도서관이나 열람실을 갈 생각도 해봤지만 키보드 커버를 벗기면 시끄럽다. 그래서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나보다. 오늘 영사회 조모임 차 카페에 모였다. 3층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다. 의자도 매우 푹신하고 매장에 들리는 노래가 아주 잔잔한 게 분위기가 좋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련다. 된장남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정신을 조금이라도 맑게 해줄 수 있다면 그깟 음료수 값 4천 원, 아깝지 않다.

  내일은 시월의 첫 날이고 서울에서 각종 북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 주 전부터 페스티벌 페스티벌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날이 닥쳐오니 가기가 싫다. 첫째도 귀찮음, 둘째도 귀찮음 때문이다. 수원과 홍대는 너무 멀잖은가. 거기 간다고 해서 별 재미있는 행사도 없을 것 같다. 마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종로에 가서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러볼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종로나 홍대나 거리는 비슷하다. 다 내팽개치고 그냥 침대에 누워 책이나 읽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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