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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70 평생을 논밭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쪼그려 앉아 일하시던 할머니셨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었다.
  사실 생기지도 않을 병이었다. 무릎에 가벼운 증세가 있어 단지 주사를 맞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주사바늘이 들어간 그 작은 구멍 사이로 균이 들어갔단다. 할머니의 무릎은 새빨개졌다. 뜨거워지고, 퉁퉁 부었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나 자식들 사는 경기도 권으로 올라오시던 할머니는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오셨다. 각종 검사를 마쳤다. 수술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으신 데다가 상태가 워낙 좋지 않으셔서 수술 후에도 썩 차도가 없을 거란다. 결국, 내 상병 휴가 때 수술을 하셨다. 전신마취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때 할머니 손이라도 잡아드렸어야 했는데 무심한 손자는 수술실 입구에서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할머니의 무릎이 그날따라 새빨갛고, 커보였다.
  수술은 잘 됐지만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나보다. 훨씬 나이 드신 분들도 수술 후에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시다는데 할머니는 그렇지 못하셨다. 우리 집에서 세 달을 지내셨다. 안방에서 화장실을 가는 그 짧은 거리를 할머니는 힘겹게 기댈 것에 의지해 가셔야 했다.
  움직이시지 못하니 할머니는 안방에만 계셨다. 좋아하시던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으셨다. 넓은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의 냉기 섞인 햇볕을 쬐시며 가만히 누워 계셨다. 고무 밴드를 이용해 운동을 할라치면 그것만큼 고역도 없었다. 물론 갈수록 상태가 호전되면서 조금은 수월해졌지만 처음엔 그만한 아픔도 없었다고, 그러셨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실 땐 그 짧은 거리 동안 생긴 무릎 속의 열기를 빼고자 긴 시간 무릎 언저리를 찬물로 문지르셨다.
  겨울의 바람은 한없이 날카롭다. 하지만 그런 바람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바퀴의자에 몸을 기대시고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곤 하셨다. 목표는 재활운동이셨겠지만 실상은 할머니의 피부 위로 쌓이는 안방의 먼지를 아프지마는 바람으로나마 날려 보내고 싶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먼지뿐 아니라 마음의 여러 짐도 함께 말이다.
  할머니가 수술을 받으실 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못난 손주는, 할머니의 힘든 운동도 뒤에서만 지켜보았다. 무슨 자격지심이었을까. 자신의 짐은 자기가 직접 덜어내야 진정한 해방이라고 생각하던, 그런 때였다. 할머니의 앞에서 산 위로 부는 특유의 날바람을 막아서진 못할망정, 아니 할머니 옆에 서지도 못할망정, 그렇게 할머니의 굽어진 등을 따라, 걸었다. 처음 할머니가 밖으로 운동을 나가시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각종 보온기구란 기구는 다 착용하시고 힘겹게 걸음을 떼시곤 했다. 안방에서 지내면서 움츠려든 마음처럼, 굽은 등을 가지신 채 조심스레 걸으셨다.
  그렇게 자식들 집에서 지내신지 몇 달, 할머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도 할머니를 위해서 화장실에 양변기를 놓으시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우리 집 안방의 무거운 먼지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등이 아름다워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겹게 걸음을 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나보다. 거리를 걸으며 가끔 보이는 노인 분들의 걸음을 보면 자연스레 감상적이 되곤 한다. 머리는 새하얗게 새셨지만 멋진 구두와 그에 걸맞은 힘찬 발걸음,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지만 그 짐이 누군가에게 줄 사랑의 보따리여서 즐거운 발걸음, 손주의 손을 잡고 걸으시며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걸으시는 배려의 발걸음, 한 발 한 발은 힘드시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시는 노부부의 사랑의 발걸음, 비록 오자 다리셔서 뒤뚱뒤뚱 걸으시지만 기어코 계단을 오르는 인생의 발걸음, 발걸음, 발걸음, 그리고 발걸음. 그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절로 미소가 나오는 장면이다. 살짝 웃고 지나치는 순간이지만 그때의 감정만큼은 열 걸음이고 백 걸음이고 걷는 동안 계속해서 떠오른다.
  걸음. 예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의 길이 황금빛 길이건 황토빛 길이건, 그 길은 온전히 당신의 길이고 그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인생의 의미라고, 말이다. 말은 신나게 그렇게 써놓고는 결코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은 이동할 수단이 너무나 많다. 확실히 걸음이 비효율적인 시대이다. 짧은 거리마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귀찮아서, 또 힘들어서 걷기가 싫었다. 자연히 밖으로 잘 나가지 않게 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점차 사라져갔다. 그래, 내게 걸음이란 남과 소통을 하러 가는 길목에서 나를 맞이하는 커다란 장벽이었나 보다. 한 번 그 장벽을 넘는데 실패하니 도무지 다음을 시도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 안짱다리로 힘겹게 지하철 환승통로를 걸으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으셔서 집을 나서셨겠지. 그리고 힘들게 걸으시겠지. 그리고 내 발을 쳐다보았다. 안짱다리와 다르게, 아주 다르게, 힘차게 앞으로 뻗는 내 두 다리 말이다. 할머니는 난간도 잡지 않으시고, 지팡이도 들고 계시지 않으신 채로 계속 걸으셨다. 나도, 계속 걸었다.
  과연, 계속 걸을 수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근육은 줄어들고 버티기가 힘들어지겠지. 그리고 차차 할머니처럼 등이 굽고 안짱다리로 힘겹게 도로를 걷지는 않을까, 문득 슬퍼졌다. 시간의 당연한 수순인데도 너무나 무서웠다. 아니,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에 무서웠다.
  출구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다. 지독히도 싫어하는, 북적거리는 분위기. 여기저기 신나게 대화를 하고 있고 전화로 크게 성을 내기도, 사랑을 외치기도 한다. 가게에선 음악이 흐른다. 차는 바쁘게 도로를 지나가고 보행자 역시 바쁘게 도로를 건넌다. 신호등이 깜빡이며 건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소리친다.
  다시, 안짱다리가 생각난다. 힘겹게 걸으셨지만 분명 그 발끝에는 목적지가 있을 테고 목적지를 생각하시면서 양이든 음이든 분명히 에너지를 가지고 걸으셨을 테다. 이, 새파랗게 젊은 놈은 북적거림이 싫다고 발에서 느껴지는 땅의 에너지를 거부했는데 말이다.
  누가 나를 보든, 하늘을 보고 한숨 푹, 땅을 보고 한숨 푹, 쉬었다. 눈 꼭 감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발을 디뎠다. 당장 장벽을 뛰어넘을 순 없을 거다. 발이 피곤하고 몸은 축 처져 지친다.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걷고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참 기분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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