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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낯선 세상을 보고 싶었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곳 말이다. 세상의 가장 눈 선 데가 어딘가 생각해보니 바다였더란다. 그것도 망망대해에서 자기가 일생을 지렁이처럼 기듯이 산 땅덩어리를 보고 싶었다더구나. 우주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혼자 몰래 준비한 선원증을 얻어 갑판원으로 이 배 저 배를 타고 5년간 세상구경을 하고 왔단다.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모두 돌았다더라. 일부러 낯설고 멀리 가는 배들만 골라 탔대.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배를 타는 건 그중 수월했나보더라. 정해진 휴가도 될 수 있으면 단축해서 5년 내내 물 위를 떠다니다시피 했단다. 그렇게 한 5년 떠돌고 나니까 가슴속에 바위처럼 뭉쳤던 것들이 뭐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더란다. 그 망망대해서 이 좁아빠진 땅덩어리를 보면 참 허망하기 짝이 없더란다. 사는 게 어이없기만 하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보내도 하나도 억울할 게 없을 것 같더란다. 나이 때문에 더 이상 탈 수가 없어 배에서 내리고도 부두에서 막일을 하며 바닷가에 붙어 있다가 작년에야 서울 근처로 왔나 보더라. 이젠 떠돌이 신세니 어딜 가도 바다나 다름없겠지.
  입고 있던 옷이라도 터진 건지 그가 내복빛깔의 옷을 들고 바느질을 하는 모양이다. 실을 너무 길게 꿰었는지 손놀림이 크고 느리다. 한 땀 한 땀 떠가는 손길이 더없이 신중하고도 정성스럽다. 그의 시선과 바느질감이 한 몸이라도 이루듯 빈틈없이 몰두해 있다. 어떤 누구라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바느질 하나에도 저토록 자신의 전부를 던져 하나가 될 수 있다니. 나는 그의 바느질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어느덧 그에게 바느질은 책상 앞에 앉아 종일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던 모습이나 홀로 술을 마시던 모습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는 늘 홀로 있지만 정부와 틈 하나 없이 포개져 있는 사내처럼 충만해 보인다. 고독하지만 외로워보이진 않는다.

_김이정, 「그 남자의 방」, 『그 남자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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