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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성공을 분석하다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by 양손잡이™ 2012. 2. 5.
아웃라이어 - 10점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김영사


015.

  제 기억에 '1만 시간의 법칙'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아웃라이어>. 사실 책을 보지 않았고 귓동냥으로 들은 '법칙'이었는데요,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 다른 책들도 다들 괜찮더라고요. 무얼 고를까 한참 서성이다가 결국 이 책을 뽑았습니다. 결과를 봤을 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제가 가진 착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1만 시간을 어떤 일에 투자하면 그 일의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듣고 그냥 자기계발서겠거니 했습니다. 사실 별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전 자기계발서를 정말 안 좋아하거든요. 아직 학생이라 여유가 넘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책을 읽어 본 결과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인문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 근래 읽는 인문서들 모두 재밌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좋은 책을 잘 골라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건 간단하거든요. 여태가지 성공을 다룬 책은 다 뻥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성공의 비결은 모두 틀렸다! 줄이고나면 별 시답잖은 말인데요, 이런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예, 그 예시를 아주 재밌게 썼더군요.

  첫 장에서는 캐나다 하키 선수를 말합니다. 캐나다는 하키의 나라라고 하는군요. 그곳은 어릴 때부터 될 성부른 나무를 미리 캐치해서 집중 훈련을 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더라고요. 주니어 팀이었나 어디었나, 그 팀에 있는 선수들의 생일을 따져보니 웬걸, 전반기에 태어난 선수가 엄청 많은 거 있죠. 캐나다는 선수등록을 1월에 시작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기에 1월 생과 12월 생은 같은 나이이면서도 경험과 발육 상태가 꽤나 차이가 난다고 하네요. 그런데 재밌는 건 성인팀에서도 주니어팀과 같은 경향을 보인답니다.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팀에 미리 발탁되어 강한 훈련을 받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동안 생일이 늦은 아이들은 처음부터 하키를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캐나다 하키 계는 재능을 가진 이들 절반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우연과 기회가 합쳐져야 한다 이거지. 2장으로 넘어가니 이번엔 컴퓨터 얘기가 나옵니다. 빌 조이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나오네요. 여기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합니다. 많은 성공한 이들은 1만 시간의 연습을 거쳐 제 분야에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고 창의력을 마구 발휘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컴퓨터 천재들이 태어난 년도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죄다 1950년대 생입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네, 우연입니다. 원래 컴퓨터는 본체를 방 하나에 가득 채우고 천공카드인가 뭐시기인가를 넣어서 한 번에 한 작업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75년에 획기적인 물건이 하나 나옵니다. 커다란 메인 컴퓨터에 케이블을 연결하여 쓰는 컴퓨터 키트가 등장한 것이지요. 바로, 50년대 생 아이들이 커서 한창 공부를 할 시기에 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주변에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천운'이라고 할 정도의 기회.

  이 외에 부모님이 영향을 미친 천재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펜하이머 이야길를 보니 상당히 괴짜더군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좋은 영향(대화와 설득력)을 받은 그는 학교에서 정학을 받는 걸로 일이 끝납니다. 하지만 좋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크리스 랭건은 너무 똑똑하지만 교수와 소통을 하지 못해 학교에서 나오고 아무런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바로 가정환경이라는 변수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성공'의 비결을 단순히 지능지수와 노력이라고 한 것들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운과 기회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틀림없죠. 헌데 2부에서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2부 제목은 유산(Legacy)입니다. 각 나라마다 내려오는 문화와 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대체 왜 소개돼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서 조금, 아주 조금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엮은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더군요.

  책 후반부에 미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습니다. 농경문화가 내려오는 아시아인들은 비농경국가에 비해 성실합니다. 노력을 하는만큼 결과가 나오는 농사일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고 공부를 하면서 피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누구보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율학습을 마친 뒤 누구보다 늦게 학교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이런 교육 문화를 미국에 조금 적용시켜 보았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다 이거죠. 한국에서 그리 욕하는 교육문화를 미국에서는 좋다고 난리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교육 효율성이 미국보다 좋느냐? 그것도 아닐 거란 말이죠. 반면 위계질서가 뚜렷한 우리 정서 때문에 대한항공 비행기가 괌에서 추락하고 만 사건도 있었지요.

  미국이 집중과 예절의 한국 정서를 배우는 동안 우린 여유를 말하는 미국 정서를 가져올 필요가 있는 거지요. 대한항공 머리로 외국인이 뽑힌 뒤, 위계질서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기장, 부기장, 기관사들을 죄다 다시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전처럼 권유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상급자더라도 과감히 명령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만들었지요. 그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쥐고 있는 비행사에게 필요한, 미국적인 사고지요.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팀 내 위계질서를 없애고자 히딩크 감독이 했던 시도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명보야, 밥 먹자!"고 했던 김남일 선수의 말이 재밌죠.

  어떤 부분에선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곧게 지켜야 할 신념이 있어야 할 반면 필요한 부분에서는 남의 말을 잘 듣고 상황과 시기, 대세에 맞춰 유연히 대처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성공은 노력뿐 아니라 기회와 문화에서 온다는 사실을 강하게 알려준 이 책, 매우 좋았습니다. 우리 문화를 고집하지 않고 주위로 눈을 돌려 성공하는 문화를 발굴, 적용해야 한다는 것.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태도. 또 따져보면 난 안 될 거야, 하며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개인의 자세를 고치고 시야를 조금 넓게 보라는 메시지도 주는 책이었습니다. 많은 가능성을 죽이지 않고 이 사회를 일궈낼 수 있는 힘은 나뿐 아니라 기업과 사회에도 있다는 점을 '그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하긴, 그래서 그리도 인재개발에 많은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거겠죠?

  아, 쓰고 보니 결국 또 요약이 되어버렸네요. 인문서 감상을 이따위로 하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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