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야기/책 이야기

[책소개]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로랑 베그

by 양손잡이™ 2013. 12. 22.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은이) | 이세진 (옮긴이) | 부키 | 2013-12-20 | 원제 Psychologie du bien et du mal (2011년)











원문: 경향신문 문화면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312202015205&code=960205)


  가끔은 성실한 사람이 더 나쁠 수도 있다. 나치 수용소 간수였던 루돌프 랑은 누구보다 ‘의무’에 충실했다. 베트남에서 노인, 여자, 어린이 등 500명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냈던 아나톨 데블레도 “근면한 공무원이자 성실한 가장”이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친위대 고위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지켜보면서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다. “행위가 아무리 흉측할지라도 그 행위 주체는 괴물 같지도 악마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다고도 주장한다. 200만명에 가까운 양민을 학살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의 한 보안요원은 “우리 모두가 예외없는 희생자”라고 둘러댄다. 사회학자 리카르도 오리지오는 7명의 독재자를 인터뷰했는데 정적을 고문하거나 암살하고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그들조차 “공동선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저자의 딸은 이렇게 물었다. “아빠, 사람은 원래 착한 거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더구나 ‘착하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모여도 ‘나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면. 저자가 딸의 질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평소 별 인기 없던 그의 글에 댓글이 폭주했다. 레바논인 예수회 수사는 ‘원래 선하거나 악한 인간이 있을까요’라고 했고, 젊은 연극 연출가는 ‘그럼요, 선과 악은 공존하는 거죠’라고 했다. 저자는 딸에게 확실한 답을 줄 순 없었지만 대신 사람들이 그 질문을 얼마나 흥미롭게 여기는지는 깨닫고 이 책을 썼다.


  프랑스 그르노블대 교수인 저자의 전공은 사회심리학이다. 사회심리학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관념, 정서, 행동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선이니 악이니 하는 걸 믿지 않더라도 타인들이 무엇을 선과 악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의 행동은 사회적 기대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에 따라 선과 악으로 평가되고 곧 좋고 나쁨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태어난 지 고작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저자의 아들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아기의 상태를 체크한 간호사는 차트에 ‘순하게 행동함’이라고 적었다.


  경제학은 인간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라며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주장하지만 단편적 이해다. 인간은 사회에 편입되고 싶은 욕구에 더 많은 지배를 받는다. 저자는 “인간의 선행과 악행, 그 모든 행동의 첫 번째 동기를 인간의 사회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다는, 사회에 더 잘 편입되고 싶다는, 도덕적 열망을 추구하는 호모 모랄리스, 즉 ‘도덕적 인간’이다.


  한 유머 작가는 양심이 ‘누가 보면 어떡해!’라는 내면의 속삭임이라고 농을 풀기도 했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을 두 방에 나눠 들어가도록 한 뒤 한 방에는 스크린에 꽃 이미지를, 다른 방에는 사람의 눈 이미지를 띄워 놓는다면 후자의 경우에 이타적 행동이 더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조깅하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보다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열심히 달린다. 공중화장실에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빈도가 높아진다. “인간의 교류에서 60%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가하는 일이 차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회적으로 배척당한, ‘인간의 온기’를 거부당한 사람들은 정말로 체온이 떨어지기까지 한다.


  처벌이나 통제, 달콤한 보상은 인간을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그때뿐이다. 7~11세 아이들을 봉사활동에 보낸 뒤 한 집단은 작은 장난감을 보상으로 주고 다른 집단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다시 봉사활동을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장난감을 받았던 아이들은 44%가 참여 의지를 보였지만 아무것도 받지 않은 아이들은 100%가 또 가고 싶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넌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라고 ‘도덕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왜 이런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회를 만들까.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유명하다. 실험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최대 450V의 전기충격을 줄 수 있는 버튼을 단지 지시받았다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고 눌렀다. 양심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전기충격을 가했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알고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돼 있는 사람일수록 불복종을 꺼린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극빈층이나 실업자, 장애인은 그들의 탓이라고 생각하기에 경멸한다.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말했다. “괴물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타인과 접속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다른 사람이 잘되는 데서 심리적 충족감을 얻는다. 도덕의식은 인간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생후 6개월 아기조차 이타적인 사람들을 선호한다. 아기들은 짧은 만화영화를 보고 난 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캐릭터보다 도와주는 캐릭터를 훨씬 선호했다. 인간이 취하는 도덕적 태도가 배제되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최소한의 발판을 디디고 일어설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