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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오찬호

by 양손잡이™ 2014. 1. 9.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8점
오찬호 지음/개마고원



004.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강의를 마친 후 으레 그랬듯이 도서관 1층에서 책을 보았다. 평소 좋아하던 박민규의 신작 소설이었다. 뒤척여가며 책을 읽는 중에 이제 막 복학해 학과 공부에 열심인 한 동기가 두꺼운 전공책을 들고 와서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친구는 전공책을 펼쳐 오늘 배운 내용을 다시금 보았다. 그렇게 삼십여 분이 지나자 친구는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너, 뭐 보냐. 소설. 소설? 응, 소설. 야, 그럴 시간에 토익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 순간 매우 화가 났지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친구는 선의로 말한 것이 분명하다.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된 친구에게 작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취업을 하려면 높은 토익점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조언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격증을 따는 건 어때? 영어 말고 다른 언어도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공모전 준비도 해보고. 분명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말들이다. 이 조언의 결승점은, 결국 취업이다.


  대학이 이미 취업양성소가 되었다는 말에 발끈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상은 맞는 말이다. 수능점수에 이어 취업률로 대학을 줄세워 평가하고 돈이 안되거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이 되어버렸다. 모두다 취업을 외치지만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우리나라에 단순히 학력만으로 취직하기도 힘들다. 영어는 당연지사, 일본어나 중국어까지 공부해야 하고 수십 개의 각종 자격증 취득에, 면접관에 잘 보이려고 성형도 불사하는데다가 '자소설'에 어울리는 휘황찬란한 경험까지(봉사활동, XX봉 등반, 마라톤 참가 등등…!) 해야 한다. 우리는 취업이라는 가시적 목표를 위해 시간을 쪼개어 관리하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계발'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 계발은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도 목매다는 토익 점수와 자격증, 제 2외국어, 공모전이, 우리의 재능을 일깨워주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지인 중에는 딱 세 명 보았다. 당신은 아니라고? 난 정말 재밌어서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봐, 양심에 털난 거 다 보인다고. 우리 세대의 자기계발은 그저 취업준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 보기, 책읽기는 그저 생각없는 이들이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잉여활동이 되어버렸다.


  자기계발 열풍은 우리가 성과사회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열심히 한만큼 성과를 얻는 사회는 공정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진정 노력만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반문해보아야 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서 오는 교육 기회의 불균등부터 생각해보라. 세세히 따지면 출발점부터 살아오는 환경까지 모두 다르다. 죽어라 해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작은 희망으로 간간히 버틴다.


  자기계발 사회에서는 모든 잘못이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된다. 노력하면 안되는 게 어딨냐는 태도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남이 조금만 힘든 소리를 해도, 진작에 공부하지 않고 뭐했느냐고 타박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그저 노력할 의지 없이 염치가 없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린다.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걸맞는 결과(정규직)가 찾아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은, 원치 않는 결과(비정규직)이 자신에게 다가올 거라는 예상을 못하게 만들어 타인과의 연대를 무너뜨리고 만다. 이는 동시에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확대재생산한다. 대학들끼리는 '명확하게 노력의 산물인' 수능점수로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그보다 아래 학교와 함께 언급되는 걸 무척이나 꺼린다. 모든 집단은 편견의 가해자이면서도 희생자이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시선을 잠시 멀리해 다시 생각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큰 장애물은, 노력 부족의 문제를 사회 구조 운운하며 환경 탓만 하는 투덜이로 바라보는 편견이다. 또한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문제제기 자체를 효과적으로 봉쇄한다. 하지만 강신주는 문제제기 자체가 대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왜 우리가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공감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까.(사실 책에서 말하는 '해결책'은 책의 전체 내용에 비해 다소 빈약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문제를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세상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왔다. 사회는 하나하나의 개인들로 인해 변해왔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한대로 살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일까? 그런 성공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제 제대로 고민을 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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