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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의자놀이 - 공지영

by 양손잡이™ 2014. 1. 20.
의자놀이 - 10점
공지영 지음/휴머니스트



008.


  글을 쓰기 전에 고백하건대 공지영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으로서 문학적 가치를 보여준 것은 없고 이슈가 될 만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생각해서이다. 세간에 가장 알려진 <도가니>도 소재가 자극적었지 소설로서는 큰 가치가 없다고 폄하했다. SNS 상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소설가가 소설이나 잘 쓸 것이지라는 생각도 했다.


  돌이켜보니 그의 소설을 온전히 읽은 적이 없다. 문학적으로 이룬 것이 없느니, 그냥 베스트셀러를 쓰는 작가라느니, 편견에 쌓여 공지영이 내게 작품으로 해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전문적인 척 말만 해댔으니, 이제서는 꽤나 부끄러울 나름이다. 생각을 바꾼 건 역설적이게도 소설이 아닌 르포르타주다.


  책은 쌍용자동차의 파업을 다룬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연봉도 높은데 불법파업을 하네, 공장을 걸어잠그고 볼트를 날리네, 경찰을 폭행하네, 파업의 뒤에는 빨갱이가 있네…. 많은 언론에서 다루었던 쌍용차 파업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어려우면 해고절차를 밟는 게 당연하다고 은연 중에 말해왔다.


  이것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속살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의 억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쌍용자동차는 대우에 매각된 후 다시 중국의 상하이차에 매각된다. 당시 상하이차는 신규설비 및 프로젝트에 자금출자와 노동자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몇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쌍용자동차의 기술만 유출됐다. 투자 없이 기술 유출만 이뤄진 결과 적자가 심해졌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을 개시한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고용안정 협정과 신규투자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신규투자는 없었고 지속적인 기술 유출만이 있었고, 쌍용차는 심각한 적자를 맞는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이는 보수언론에서도 부정적으로 본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 평가액을 감액하는 둥 감사보고서가 비상식적으로 작성된다. 법원이 임명한 법정관리인의 한 사람으로는 우습게도 경영부실의 책임자를 내세운다. 정상화를 위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은 오직 구조조정의 경제성과 필요성만을 역설했다. 결국 법정관리안은 승인받는다.


  사측은 전체 노동자의 37%에 이르는 2,646명의 정리해고안이 발표되었고 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돌입힌다. 용역, 구사대와의 물리적인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외부에서는 수도와 전기, 음식 그리고 의료지원마저 끊어버렸다. 인도적인 배려는 전혀 없었다. 두 번의 경찰병력 투입이 있었다. 창고에 10년도 넘게 보관돼 있던 최루액과 외국에서도 사용이 제한된 테이저건을 사용했다. 용산참사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컨테이너를 사용하여 공장 안으로 진입하였고 무차별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대항하는 인원이 아닌 무장해제당한 사람에게도 봉과 방패를사용하였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투쟁 중,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가 언론에 끝없는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눈치만 보던 언론 3사의 뉴스는 노조측의 가시적인 폭력성과 불법파업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지 전체 사항은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견지할 땐 좌우 어떤 편향도 없는 그대로의 정보를 받아야 함에도 정보는 균등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의자놀이>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한번 더 생각해야 했다. 뒷이야기는 전혀 모르고 티비에서 떠들어대는대로 보고 믿었다. 통계의 함정에 빠져 연봉 몇천의 귀족노조라고 했고(이는 이번 철도 파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동료였던 이들에게 파이프를 들이민다고 했다. 돈 몇 푼 더 받자고 그랬을까. 그 누가 동료에 맞서고 싶었겠는가. 해고 자체가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회사의 방만 경영에 대해 왜 노동자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가) 파업에 나선 것이다. 단전이 된 공장 안의 비상발전기를 이용해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게 해 회사의 금전적·시간적 손실을 줄이려 했던 그들은 모두 회사를 살리고 싶어 했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앞을 지나가는 회사원을 보며 공지영은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겪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모두는, 자신은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고 파업 같은 '불법적인 일'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공감의 문제다. 지금 같은 사회라면 모든 노동자는 언제든지 해고당하고 쌍용차 노동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어디서 일하든 노동에 대한 권리를 인지함과 동시에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노조와 파업이라는 단어에 심한 알러지를 갖는 우리 사회에서 이를 견지할 수 있는가는 두 번째 문제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 후 구속당한 아픔보다 이후 쏟아지는 사회적 거부감과 비난이 더 절망적이었다고 한다. 인간 이하의 모습을 접하고 그런 대우를 받은 이들을 우리는 따뜻한 눈으로 봐야 한다. 자본논리로 굴러가는 세상을, 때론 부정하고 크게 소리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마지막 한 명이 탈락할 때까지 계속되는 의자놀이를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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