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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토요일 - 이언 매큐언

by 양손잡이™ 2014. 3. 11.
토요일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문학동네



029.


  문학을 주로 다루고 감상도 정말 맛깔나게 쓰는 블로그 이웃의 별 다섯 개 리뷰를 보고 책을 고르곤 한다. 더러는 익숙한 책도 있지만 거의 처음 듣는 책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이다. 문장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이 블로거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는 타입이다. 번역에서도 매끄럽고 참신한 번역을 찾고, 나와는 영 안 맞는 은희경, 코맥 맥카시, 이언 매큐언을 최고로 꼽는다. 세 작가의 대표작(<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속죄>(이언 매큐언), <로드>(코맥 맥카시))을 읽어본 결과 아, 난 역시 좋은 독서가는 못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모두가 극찬하는 <속죄>는 묘사 덩어리에다가 판본 때문에(그렇게 믿고 싶다) 더욱 읽기 힘들었다. 한 30쪽 읽고 덮었던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사실, 구매계획이 전혀 없던 책이었다. 친구들과 홍대 카페 꼼마에 들렀다가 나 책 좀 읽어라는 으스대는 자세로 고르고 고르다 평소 읽지도 않을 책을 서가에서 꺼낸 게 화근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김영하의 <검은 꽃>을 구입했다) 읽자니 전의 경험 때문에 버겁고, 안 읽자니 들인 돈이 아까웠다. 며칠간 다소 읽기 쉬운 책들을 읽었기에 어려운 난도에 한번은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지.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확실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은 주인공 퍼론이 토요일 하루 동안 겪는 일을 장장 50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묘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폐허>(스콧 스미스)에서도 며칠 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여기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다. 잠 자다 읽어나고 창밖을 보는데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고 무슨 일이지 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간다. 이 단순한 상황에 작가는 수많은 글자를 넣는다. 인물이 겪는 상황의 단순묘사는 물론이요, 갑자기 아들과 아침에 대화를 했다거나 딸과 장인어른이 과거에 싸웠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가장 친한 동료에 대해 줄줄이 소세지로 말한다.


  스토리의 방향성은 아주 미미하고 곁가지로 계속 빠지고 다시 돌아올 듯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빠지는 모양새가 답답할 만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요일>은 재밌다. 서술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듯한데 자칫 잘못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아갈 이야기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 읽기 지루하고 너무 나갔다 싶으면 얼른 제자리로 끌어오는 느낌이랄까. 단 하루에 일어난 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알 수 있고 그덕분에 인물 간 대화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풍부하다 못해 넘칠 듯한 서술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모든 감상에서 평범한 토요일에 퍼론 가족에게 닥치는 사건을 통해 일상에 갑자기 스며드는 폭력을 말하던데, 솔직히 그런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서술과 묘사에 불안한 이미지를 은밀하게 삽입하는 건 역시 디테일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남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 눈에 띈다.


  퍼론의 서술 중 편안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온다. 아내가 곤히 자는 침실, 태곳적 진화의 딜레마(잠은 자야겠고, 그러다 잡아먹힐까봐 두렵고)를 생각하며 차 문을 잠근 차 안, 병원 동료 제이와 함께 있는 스쿼시코트, 가족과 모인 집은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든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동시에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한다거나 사랑하는 느낌이 아니다. 새벽의 비행기 사고를 아들과 대화할 땐 그저 단순한 사고로, 속으로는 흉폭한 테러이길 은근히 바란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을 넘어 완전히 밀어내려는 수준으로 강화된다. 벡스터와의 첫 마찰에서 퍼론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금만 상대에게 맞췄다면 저녁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의사의 권위를 이용하여 심리적으로 그를 갖고 놀아버리고 만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벡스터의 눈에서 원망이 아닌 슬픔이 보이는 마지막 장면과도 대치된다.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라고 생각하는 퍼론에게 평화는 오직 그만의 평화일 뿐이다.


  사실 퍼론의 집에 예정치 않은 손님이 하나 더 있다.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밝히지 않겠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퍼론의 집에는 또 다른 타인이 껴들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퍼론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타인은 무조건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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