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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마녀 프레임 - 이택광

by 양손잡이™ 2014. 4. 27.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자음과모음(이룸)



042.


  중세의 마녀사냥을 다루었다.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때의 논리 프레임인 '마녀 프레임'은 현재 어떻게 변주되어 살아 있는가. 발췌만 해도 좋은 글들이니 이번엔 발췌만 나열한다.



  체제에 위기 국면이 오면 언제나 이념으로 똘똘 뭉친 결사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근본주의 창궐은 특정 체제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_21쪽


  이렇듯 마녀사냥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유 거리를 던져준다.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이념을 통해 통제되었던 질서 정연한 세계가 무너지고 아노미 상태를 맞이하는 상황은 1987년 이후 민주화 체제를 맞이한 한국 상황을 연상시킨다. 일부 냉전 세력 인사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냉전 시절이 좋았다"라고 발언하는 것은 인식적 혼란과 도덕적 아노미 상태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서 정연한 세계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이들이 택한 방법은 '색깔 논쟁'이었다.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빨갱이 떄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고 말하지만 과연 사실일까? 과도한 단순화에 불과한  발상이다. 제6공화국 시절부터 한국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세계 무역 협정에 가입하고 농수산물 개방을 실시했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냉전 체제를 붕괴하게 만들고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장본인으느 빨갱이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였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냉전 수구 세력 반대편에 있는 통칭 진보 세력에게도 마찬가지 효과로 작용했다. 과거처럼 정권 투쟁만을 내세우면서 자기 정체성을 보전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것이다.    _65쪽


  새로운 의학 지식은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론과 의료 행위 사이에 있는 괴리를 인지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과 빈번하게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지식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더 이상 진단을 위한 준거점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발견되는 낯선 사례들에 대해 이 시기 의사들은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즉 과학적 세계관은 특정한 것을 명확하게 했던 만큼 그 명확성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미지의 것'으로 남겨놓아야 했다. 여기에 의사들은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따라서 지적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여러 가지 방책들을 고안하였다. 이는 지식과 정치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_90쪽


  합리성은 종종 비합리성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고는 한다.    _92쪽


  극단적으로 주장하면 마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초등학생조차도 마녀가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마녀는 판타지나 옛 이야기에서 의미를 가진 상상 속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녀는 실제로 존재했다. 또한 존재해야 했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마녀를 존재하게 한 것은 마녀 프레임이었다. 프레임을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숭고한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이 대상은 욕망이 실현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은폐하기 위한 절대적 대상이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경험과 증명을 초월해 있다는 뜻이다. 마녀는 불가능한 초기 근대 과학을 정당화하는 숭고 대상으로 작동했다. 자신이 세계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녀가 발명되었다.    _112쪽


  "마녀는 실재로 존재한다기보다 얼빠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_122쪽


르네 지라르가 지적한 것처럼 문화는 폭력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순화제일지도 모른다.    _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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