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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by 양손잡이™ 2014. 5. 16.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지음/메디치미디어



048.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서에 관한 책(메타북)을 좋아한다. 조야하게나마 짧은 글이라도 끼적이는 나도 앞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은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작법서는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 알면서도 그 중독을 끊을 수 없다. 제목부터 멋있지 않은가. 대통령의 글쓰기, 라니 말이다. 책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아래에서 연설문 작성을 했던 강원국씨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에게서 배운 글쓰기 기술과 노하우를 담았다.


  이 책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글쓰기 작법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작법서로서는 높은 평을 주기 어렵다. 1/3 정도 읽었을 때 나는 뒷내용을 알 것 같다는 왠지 모를 기시감에 빠졌다. 이건 책의 목차를 볼 때부터 느껴진다.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독자와 교감하라, 글쓰기의 원천은 독서, 결국엔 시간과 노력, 메모하라, 자료과 관건이다, 첫머리 시작 방법 16가지, 글은 메시지다, 쉽고 명료하게 써라, 형식도 무시할 수 없다, 자기만의 글을 쓰자. 글쓰기 책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사실 뻔한 얘기다. 다른 작법서에서 다룬 이야기의 되풀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연설문 작성에 관한 작문법을 다루지만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평범한 내용에 무게를 싣는 건 대통령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저자의 기억과 우리의 추억이다. 작법서에서 예문은 필수인데 <대통령의 글쓰기>는 무려 전직 대통령의 연설문과 그것을 작성하는 과정을 예시로 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똑똑하기로 그렇게 유명한 두 사람의 연설문을 말이다!) 하나의 연설문을 쓰기 위해 부하직원뿐 아니라 대통령까지 여러차례 나선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기념일에 방송에서 보이는 연설만이 다가 아니라 1년에 수많은 연설을 한다는 것도 몰랐다. 연설문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읽기 연습 후 그대로 읊는줄로만 알았건만,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에 계신 분들을 너무도 오해하고 있었다.


  풍부한 예시를 읽다보면 돌아가신 두 분의 육성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책이 특별한 영역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작법서의 형태로 두 명의 인생기록을 남긴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 몇은 추억팔이라고 수준 낮게 손가락할 것이다. 아쉽게도 '글쓰기' 자체에 관한 내용은 다소 평이했기 때문이다. 다만, 연설문은 보통 두괄식으로 쓰는 것처럼 책은 제목의 앞 단어인 '대통령'을 상기시킨다. 연설문 작성 방법에 주안점을 두지 말고 예시문들을 보길 강력히 권한다. 그분의 유창한(?) 외국어 연설도 떠오르는 지금, 이래저래 씁쓸하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명 연설문 한번 보시고 가겠다. 감히 이 연설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 말고 좋은 정당에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2009년 6 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사> _책 170,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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