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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이야기

우리 집

양손잡이™ 2011.05.13 13:22
  우리 집이 있는 언덕을 밤에 보면 달이 환희 올라있었어. 거길 오르내리느라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몰라. 자전거로 거기 오르려다가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냐. 아, 언덕 하니까 갑자기 기억나는 게 있다. 유치원 버스가 언덕 아래서 멈췄는데, 배가 너무 아픈 거야. 어기적어기적 배를 부여잡고 올라가는데 어린 나머지 괄약근에 힘이 없었을까, 그만 팬티에 변을 지리고 말았지. 그날, 엄마한테 많이 혼났고, 부끄럽게 친구도 알아버렸지 뭐야.
  언덕의 오르막 반대에는 친절히 계단이 있어. 여기서부턴 이제 엄청 어려운 길이야. 마치 거미줄. 몇 번째 골목을 돌아 걷다보면 큰 교회도 하나 있고, 거기서 또 몇 번째 길로 죽-가면 북가좌 교회가 나왔어. 그 교회는 우리 고모가 다닌 교회기도 하고, 바로 및 엄청 좁은 셋방이 우리 부모님 맨 첫 집이기도 해. 좀 커서- 집이 일산일 때, 북가좌 교회로 잠시 길을 든 적이 있는데, 거기가 오르막길인데다가 우리 차도 별로 안 좋아서 올라가다 시동이 꺼져 뒤로 굴러갈 뻔했던 적도 있고.
  우리 집 내리막 계단 쪽으로 들어가면 유일하게 아는 집이 있는데, 누구네인지는 기억은 안나. 거기로 비디오 보러 가기도 했고 그랬는데. 친구, 하니까 기억나는데 우리집 바로 앞 집 2층에 세 들어 사는 친구가 있었어. 거긴 장난감도 많고 나랑 잘 놀아줘서 자주 놀러갔지. 창문, 그 좆만한 창문으로 통과한다고 낑낑도 대고, 피구와 통키 비디오도 보고…. 그 때 누구 차 뒷 트렁크에 통키 만화책 전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언덕을 내려가다 보면 꽤나 큰 집이 있는데 여기 역시 2층에 사는 친구가 있었어. 거기도 역시 장난감이 많았지. 몰래 장난감 몇 개 훔쳐갖고 나오기도 하고, 참 우습지. 어릴 때의 소유욕의 치기라 할까. 그리고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초등학교 가는 길에 어떤 집이 있었는데, 그기서 그랑죠니 피닉스니 가지고 놀았던 것 같아. 그땐 그게 그저 그런 장난감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고가에 팔리더라구.
  초등학교라, 아직도 기억난다. 그 미친 듯한 높이의 언덕. 하나는 언덕, 후문은 끝없는 계단. 고행의 108계단은 이거와 비교할 수도 없어. 북가좌 초등학교. 그땐 국민학교였구나. 입학식 사진을 보면 어렴풋이 기억이 나.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씨가 써진 간판 앞에서 꽃을 들고 찍은 사진. 건물도 희한하게 두개나 되.
기억에 크게 남는 것은 난로. 한번은 교실 한가운데 난로에 불을 잘못 지펴서 엄청 연기가 퍼진 일이 있었지. 다들 불난 줄 알고 얼른 거길 뛰쳐나왔어. 또 한 가지는 바로 냉각수 사건. 봄 소풍 갔다가 버스 안에서 왼쪽 발목을 냉각수에 덴 일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얼마나, 끔찍이 아프던지. 거의 한 달 간 제대로 못 걸었어. 아빠 차를 타고 등교도 하고, 아빠가 없어서 교실도 데려가주고. 그렇게 뛰지 말라고 했는데 애들 축구 하는 거 같이 해서 혼나기도 했다. 엄마가 성형수술 해줄까, 라고 하기도 하셨는데 안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내 시간의 훈장이니까.
교육하니까 유치원 생각나네. 교회에 딸린 유치원이었는데- 유치원은 맞는지도 모르겠다. 계단 밑 놀이터서 놀던 거랑 비디오로밖에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학예회. 난 거기서 군인 아저씨(두둥!)들이 나서 엄마 찾는 프로그램서 사회자(어머니를 불러봅시다! 어머니~! 나 저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를 외친다)와 「파란나라」노래에 맞춰 춤추는, 토끼 쫄쫄이 입은 역을 하였다. 근데 집에 이게 남아있으려나.
  피아노도 생각나네. 난생 처음으로 피아노란걸 접해봤을 때, 맨 첨 배운 건 손 모양. 계란을 잡듯이 살-짝 잡으란다. 거기서의 악몽은 '80일간의 세계일주'비디오. 이 비디오 보고 갖다 준다는 게, 학원 문은 닫혀있지, 선생님 집은 모르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비디오를 그냥 학원 닫힌 셔터 문 앞에 두고와버렸지 뭐야. 물론 그 비디온 없어졌고.
  비디오 하니까 생각나네. 버스 많이 다니는 길 -피아노 학원서 올라가다 좌회전-에 이발손가 미용실인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후레쉬맨을 첨 봤지. 친구 집서 "옛날에 산이 두개 있었어~" 이 만화 보고 비디오 방에서 빌리려고 했는데 제목을 몰라서 가게 주인한테 주제가 불러주고 하기도 했는데. 그 비디오 방 건너 이발소에서 내 귀 조금 잘라먹기도 하고. 거기 엄청난 언덕길서 자전거 타고 쌩-하고 내려오다 못 멈춰서 보도블록에 받기도 하고. 거기서 차에 부딪혔으면, 이런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부근에 고모할머니 집이 있었지 아마. 거기서 많이 놀기도 했었어. 슬기(뚱뚱이)가 거기 살았어. 동생이름은 미안한데 까먹었네…. 쨌든 거기서 많이 놀기도 하고…. 노는 거라곤 친구들과 집 앞 그 좁은 골목서 축구하기와 비디오 시청, 장난감 갖고 놀기밖에 없었어. 공 차다가 담 위에 뾰족한 쇠에 공 터치기도 하고. 얼마나 심심했으면 아빠가 주차시켜 놓은 스쿠터 올라탔다가 옆으로 넘어져 다리가 끼이기도 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거기서 산 건 4년 정도 된 것 같아. 꼴랑 4년이야. 그것도, 기억 형성이 잘 되지 않았을 유년시절. 오히려 그 나이여서 더 잘 기억할는지도. 그래도 그 짧은 시간, 이렇게 많은 기억이 남았잖아. 심지어 우리 셋방 주인네 딸인 승연이 누나와는 아직도 연락해. 우리 집 놀러 와서 나한테 좋은 얘기 많이 해주고도 갔구. 이런 인연도 만들고,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조금씩 만들어갔어. 추억 헤집기란 나쁜 것만은 아냐.
  집에 가면 사진 좀 찾아봐야지. 반팔, 반바지에 밀짚모자 쓴 채로 대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웃으며 찍었던 사진.



 - 대충 a4용지 규격으로 옮겨놔도 분량이 상당하다. 그냥 우리 집 언적 하늘에 달이 떠있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니, 확실히 기억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러했을 것 같다, 이거다. 집 위치가 워낙 높은 곳이었고, 집으로 가려면 경사가 상당히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그 언덕길 위로 보름달이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보름달의 환한 달빛이 언덕길을 타고 내려와 아래서 달구경 하는 나를 맞이한다…. 이게 나에게 떠오른 이미지였다. 그리고 이 글의 첫 문장인 ‘우리 집이 있는 언덕을 밤에 보면 달이 환희 올라있었어’를 쓰고는 신나게 다음 문장들을 토해냈었다. 시간도 감성적인 글을 쓰기 좋았던 밤이었고, 게다가 그때는 모두들 자고 세상이 고요한 연등시간이었다. 나는 소대장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 그저 생각나는 대로, 펜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페이지를 채워나갔었다. 문득 공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보니 상당히 흥미 있는 글이 완성되었다.


- 2009년 2월 17일, 15화학대 소대장 연구실에서, 연등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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