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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스토너 - 존 윌리엄스 (2014, RHK)

by 양손잡이™ 2015. 3. 30.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2015-011.


표지와 제목을 봤을 땐 큰 흥미가 나지 않는 책이었다. 인도의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 '더 스토닝'(돌팔매질...)이 떠오르는 제목에다가, 표지에는 연필로 그냥 슥슥 그어 완성한 남자밖에 없었다. 게다가 작가 이름은 뭔가 흔하디 흔한 미국 사람 이름인 존 윌리엄스다. 1965년 소설이 이제서야 발간되다니, 이것 또한 큰 감흥이 없었더랬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건 알라딘 블로거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을 때다. 물론 그때도 바로 윗 문단의 생각을 했었더랬다.(제목이 왜 저따구지?) 그냥 그렇게 머리에 남았는데... 교보문고에 들를 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2015년 첫 지름을 이놈과 함께 시작했다. 오랜만에 읽는 최신간 소설! 그때 함께 산 6권의 책을 아직도 안 읽고 옆에 쌓아둔 거 보니, 진짜 읽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그저 사고 싶기 때문에 산 것 같다.


이 책을 편 진짜 이유는 소설리스트의 리뷰였다. 오랜만에 소설리스트에 접속하니 이 책에 별점이 우수수 달려 있네. 네명 중 세명이 5개, 한명이 4개다. 이토록 엄청난 소설이었나? 김슬기는 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 뿐. 아무런 의심도 하지 말고, 다만 이 책의 첫 장을 넘길 것. 고요한 방과 부드러운 불빛과 넉넉한 시간을 준비하고서."


이 문구에 삘이 딱- 꽂힌 거지. 안그래도 읽기 어려운 책들 사이에서 허우적댔는데, 한줄기 빛과도 같은 책이었다. 물론 기대와 마찬가지로 읽은 후의 만족감도 대단했다.


대단히 간결한 소설이다. 농부의 아들인 윌리럼 스토너가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영문학 수업을 듣게 되고, 영문학에 푹 빠져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게 책의 주요 골자. 농부에서 교육자의 길로 전환하는 게 사실 인생에 있어 큰 변화인데, 작가는 겨우 40쪽만에 스토너의 인생을 바꿔버린다. 남은 350여쪽의 책에서 스토너가 나이를 먹어가며 생기는 일 - 우정, 사랑, 가정, 직장, 삶과 죽음 - 이 주욱 표현된다.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매우 평이하다. 기상천외한 전개를 보여주는 현대소설에 비하면 상상력도, 그다지 특별한 점도 없다.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악역도 뚜렷하지 않다.


책을 주욱 읽게 만드는 원동력은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주인공, 스토너다. 소설에서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답게 매우 우직하게 그려진다. 영문학을 사랑하고 뚜렷한 교육관을 가졌다. 학장이 들어온줄도 모르고 강의를 계속 하다가, 학장이 옆에서 인기척을 하자 외려 나가라고 하며 쫓아내기도 했다. 사랑은 다소 부족하지만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딸을 진정으로 걱정한다. 그렇다고 사랑을 모르냐, 윤리에 어긋나지만 다른 여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과거 1차 세계대전에서 똑똑한 친구를 평생 기리고, 라이벌 교수가 수작을 걸자 멋지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모습까지! 흐음,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평이하다. 별 다를 게 없는 인물이고 이야기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친구라 생각한 매스터스를 젊은 나이에 잃고, 사랑인줄 알았지만 그저 형식적일 뿐이었던 이디스와의 결혼, 딸 그레이스의 방황, 제자 캐서린과의 바람, 대학 권력다툼에서 당한 일과 추문, 큰 사랑을 받지 못한 교수로서의 삶... 천수를 누리지도 못하고 결국 암으로 병사하는 스토너... 어떤 면에서 보면 스토너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 별로 이룬 것 없이 평생 안 좋은 일만 달고 다녔으니 말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스토너는 절대 실패한 삶을 살지 않았고, 새드엔딩도 아니라고 한다. 반추하면 별 다를 게 없고 성공적이지도 않았던 스토너의 삶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스토너가 겪은 일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은 마주하고 고뇌할 일이다. 일, 우정, 사랑, 가정, 직장...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삶은 존재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기에, 심심하지만 인생을 그대로 그려 표현한 스토너를 실패로 규정하한다면 이보다 더 굴곡진 삶을 살 우리는 얼마나 슬픈가.


게다가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계속 하지 않았던가. 스토너는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삶의 끝까지 영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은 것은, 인생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퍼부으며 살 수 있는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행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는 말로 짤막하게 표현 가능한 책이다. 그러나 이런 짧은 문구는 가슴에 쉬이 와닿지 않는다. 이것이 소설의 존재 의의다. 한 문장만으로 깨이는 시와 달리,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소설이 즐거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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