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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15)

by 양손잡이™ 2015. 9. 28.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2015-035.

0. 자, 이제 모든 독후감은 감상 형식이 아니라 잡담 형식으로, 완전 무질서하게 쓰는 걸로. 블로그 감상 카테고리에 있던 글을 모두 독서 카테고리로 옮겼다. 완전 자유분방한, 무형식적인 글을 써야지.

0-1. 물론 이건 조르바 때문은 아니야.

1. 페이스북에 한참 빠졌을 때, 한 페친분께서 그렇게 조르바, 조르바를 외치셨다. 일도 열심, 운동도 열심, 독서도 열심, 인간관계에도 열심, 뭐든지 엄청 열성적이고 멋있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조르바를 그렇게 애타게 찾으셨다니, 과연 조르바는 어떤 인물일까 궁금증이 들었더랬다. 자유인 조르바를 향한 열망과 박수갈채는, 척하기의 귀재인 내게 솔깃한 인물이었다.

2. 독서기록을 검색해보니 이 책을 처음 편 건 2011년이다. 대학 졸업반일 때다. 페이스북 일도 일이지만, 글자가 작고 줄간격이 좁으며, 무엇보다도 양장본이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열린책들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책(도스토예프스키 책과 더불어)이 이 책이기도 해서 한번 욕심내봤다. 무려 내 생애 처음 편 열린책들 세계문학 도서이다.

3. '11년엔 무슨 책을 읽었나. 대부분이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고,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해리포터 7부 죽음의 성물, 라이트 노벨, <솔로부대 탈출매뉴얼>... 음? 분명 읽었다고 쓰였는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책들도 많다. 앵무새 죽이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곰스크로 가는 열차, 캐치-22, 인간 실격, 차가운 밤... 그러니까, 결국 하고픈 말은,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깜냥이 안됐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열린책들 판형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지금도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이걸 읽었다고 표시해놨으니, 잘난척하고픈 마음은 진짜 엄청났다. 더 뒤지다보니 '13에도 '또' 읽었다고 돼있다. 아아, 나는 거짓말쟁이야.

4. 요새는 열린책들 판형에 좀 적응이 됐다. 지금 읽는 책은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책세상, 2014)인데 너무 큰 줄간격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내용이 너무 널찍널찍하니 한눈에 글이 들어오지 않아 산만하다. 판형에 적응은 했다 쳐도, 이 책을 처음 편 게 7월 초인데 마지막 장은 9월 중순에 덮었으니, 2개월이나 붙잡고 있던 건가. 오호 통재라. 그나마 이 책을 읽을 수 있던 계기는 직전에 읽은 <위험한 독서의 해>(앤디 밀러, 책세상, 2015)다. 재미없고 읽기 힘들어도 끝까지 읽으면 뭔가 배울거리가 생긴다는 말에 꾹 참고 읽었다.

5.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 조르바>는 재미없다. 정말이다. 중반까지는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주인공인 '나'가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 탄광에서 일하는 이야기뿐이다. 하는 일이라곤 낮에 탄광에서 일하고 밤엔 술을 마시고 자고 일어나 다시 일하고 먹고 일하고 먹고... 이야기는 눈꼽만큼씩만 흐른다. 책을 다 읽고 빨간 책방을 들었는데 김중혁 작가도 1/3까지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작가가 소설의 틀을 짜고 쓴 게 아니라 되는대로 쓰다가 마무리한 것 같다고 추측한다. 아, 공감, 대공감. 그나마 뒷부분은 많은 이야기가 있어 읽기에 재밌어서 다행이었다.

6. 매일 책만 읽고 붓다에 대한 글을 쓰던 '나'는 세상 어느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조르바에게 감탄한다. 대체 왜 그렇게 감탄하고 경이롭게 쳐다보는지 공감할 시간도 주지 않고 혼자 우와, 최고, 이러면서 치켜새운다. 대체 그렇게 감탄하는 이유 좀 알려주지 그래, 혼자만 깨닫지 말고. 내가 주인공인 '나'보다 펜대 굴리며 책상에 앉아 엉덩이가 문드러지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앉아만 있어서일까.

7. 조르바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의 마초적 기질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바람둥이인 그에게 여자란 즐기기 위해 있는 존재고, 남성이 항상 여성보다 위에 있다고 말한다. 읽다보면 은근히 여성비하적인 발언도 많다. 허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1947년)를 생각하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조르바처럼 거칠게 말하고 여자를 탐해 오입질(!!!)을 좋아하면 그건 천하의 샹놈이 되는 거여. 그나마 조르바가 로맨티스트여서 다행이지.

8. 굳이 여성을 비하할 마음은 없지만, 조르바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고, 그는 여자를 좋아하니 그렇게 환장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즐겨라.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한다. 이것이 조르바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9. '나'와 조르바의 다른 점이 있다면 육신을 대하는 점이다. '나'는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긴다. 심지어 먹는 것조차 부끄러운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먹어 치웠다. 조르바는 완전 딴판이다. 육신을 부끄러워하고 정신적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던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건 춤추고 노래할 때의 조르바일 것이다. 조르바가 환희에 차 노래부를 때, '나'가 책상머리에 앉아 수없이 읽고 고민하던 시, 음악, 사상- 이것들이 아크! 아크! 따위의 절규로 터져나온다. 한글을 처음 배우신 할머니들께서 쓰신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영롱할 때, 책을 보고 거듭한 연구 따위가 뭐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온전히 행동만으로 이루어진 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춤으로 소통했다는 조르바의 이야기는 어떤 종류의 '정신'이 중요한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일 것이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나'가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달라는 문단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10. 조르바는 책과 친하지 않았지만 대지 위에 두발로 서서 바람, 땅, 물, 생명 만물의 영혼을 느끼며 살아왔다. 반면 '나'는 책상에만 앉아 온갖 책을 읽으며 쓰기만 했다. 조르바는 죽음은 무엇일까 하는 말에 '나'가 읽은 책에 뭐라고 쓰였냐고 묻는다. 줄창 묻는 게 그거다. 백날 책만 잡고 있어봐야 알 수 있는 게 무어냐고.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을 엮어 쓴 책이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작가의 모습과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 글이나 쓰던 작가에게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실제로 만난 이의 이름도 조르바란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허나 지식과 경험은 같이 이루어져야 빛을 발하는 법이다.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두 인물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종국에는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도 조르바에게 조금은 감화된 '나'가 보기 좋아보이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11. 나만의 상상인데, 현대 사회에 조르바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작정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게 과연 최선일까. 내가 보기엔 적어도 조르바는 능력 있는 남자다. 그것도 매우 출중한 능력. 일을 해도 탄광을 캐는 잡일이 아니라 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심지어 케이블카도 세울줄 안다.(물론 결과는...) 산투르도 칠줄 알고 열정적으로 춤도 출줄 안다. '나'와 헤어진 뒤로 또 땅을 파서 한몫 잡은 듯하다. 그렇다. 엄청 좁고 빈약한 시야로 판단하건데 우울하게도, 조르바처럼 살기 위해선 특출난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덤으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은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월급쟁이로 살아라? 뭐야 이거.

12. 하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먹지 말지언저. 비록 일과 돈에 매인 우리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조르바 말마따나,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믿음이 있느냐- 곧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이 성물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없다면-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자유가 있을진저.

13. 인생. 변화무쌍하고, 요령부득이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무자비한 인생. 그런 인생 속에서 젊음이란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조르바는 말한다. 흐음, 발췌문을 써놓고도 이제서야 깨달았는데 이 책을 조금 오독한 것 같다. 인생을 무조건 즐기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구나. 이 책에서 유명한 대사도 아래와 같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14. 마지막으로 과부의 대사을 인용하면서 성급히 마무리한다. 오독을 감추고자 과감히 발췌문으로 가득 채운다.

⎡와요, 어서 와요. 인생은 한줄기 빛처럼 지나가는 것. 어서 와요, 와요, 와요,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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