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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잡담 - 그리기 연습을 해봅시다.
    사는 이야기 2015.11.13 09:00

     난 뭐든지 갖고 싶다. 그게 고가의 물건인든 뛰어난 재능이든, 그 어떤 것이든 동경하는, 어쩌면 썩 좋지 않은 습관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문자와 공부하는 인문학, 철학, 과학보다 예체능이 더 탐난다. 체보다는 예에 욕심을 내는데, 운도이야 어차피 몸 쓰는 것. 그저 행동하는 근육만 조금 단련이 되면 큰 무리 없이 남들과 즐기기 어렵지 않다. 운동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이리 느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대표 골키퍼로 다른 학교와 축구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농구를 시작하고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예술 쪽은, 당최 뭐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쳐서 '듣는 법'은 알지만 느끼고 소리를 내는 법을 전혀 모른다.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웠어도 기계적으로 음만 내는 법을 배웠지, 진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었던가.


      대학 동창 중 피아노를 제법 잘 다루는 친구가 있다. 한번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친 피아노 곡이라며 동영상을 올렸다. 깜짝 놀랐다. 화질은 안 좋지만 들리는 음악은 수준급이었다. 상상을 뛰어넘어 적어도 내 귀에는 원곡만큼 멋있었다. 덧글로 네가 친 거 아니지, 라고 쓰려다가, 내 몰지각함과 질투심니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관뒀다.


      마침 여자친구도 피아노를 즐겨 치고 그걸 듣다보면 즐겁고 신나기에 나도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운동과 피아노 강습을 겸하기 힘들어 시작은 못했...던 게 아니다. 시간은 핑계다. 기숙사 지하에 피아노 한 대가 있어 언제든 가면 연습할 수 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것뿐이다.


      여자친구에게 전자키보드를 잔뜩 물었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따로 나만의 공간에 살면 키보드를 하나 사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할 거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캬, 음악작업이라니, 정말 그럴 듯해보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올해 초에 한 친구는 통기타 연습을 해서 멋진 노래와 함께 공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나와 비슷한 헛소리일 뿐이라는 게 며칠전 밝혀졌다.


      올해 초였던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두었다. 회사 게시판에 동호회를 만든다는 글이 올라왔다. 워낙 악필이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으로 독학하긴 힘들 것 같아 가입신청서를 들이밀었다. 인원이 부족해 결국 동호회는 시작하지 못했다. 내친김에 글씨 교정이라도 해보고자 결심했다. (가끔 두 여동생과 글을 쓰면서 놀다보면 소녀소녀한 글씨체 가운데 요즘 초등학생도 안 쓸법한 글씨체에 좌절하곤 했다)


      글씨를 교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바른 글씨체로 쓰기를 꾸준히 하면 된다. 교보문고에서 많은 교정 관련 책 중 하나를 골랐다. 굳은 마음으로 첫 획을 그었다. 이틀 연습하고는 다신 책을 펴는 일이 없었다. 나에게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는 이미 쓰기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미술의 범주였다.

    모든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싫어한 과목은 미술이었다. 음악이야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가정은 나의 화려하고 따뜻한(?) 손놀림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술은 아니었다. 필기야 암기하면 된다지만 실기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니, 똥이었다. 똥...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사실 나도 미술학원에 다녔더랬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 한가지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겉에 니스를 발라 말려야 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던 나는 격정적으로 니스를 발랐다. 빳빳한 니스붓이 나의 스피드를 만나... 왼눈에 니스가 들어가고 말았다. 황급히 물로 씻어냈으나 그게 독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안경을 썼다. 물론 니스가 들어가지 않은 오른눈도 같이 나빠졌으니 시력 저하의 주범이 니스는 아니다. 니스가 눈에 영향을 주었든 안 주었든, 아픈 기억이 마음 깊숙히 박혔으니 미술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뭐, 트라우마 따위는 단순한 핑계일 뿐이고, 나는 단순히 미술 감각이 심히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색감이 정말 부족한 편이다. 미술시간에 사과를 연필, 볼펜, 목탄으로 데셍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볼펜 한 자루만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과의 명암을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엉망인 그림을 제출했다. 아직도 집에 이 그림이 있는데, 다시 꺼내보려니 침대 밑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과여서 그럴까 싶다가도, 미술을 즐기는 다른 공대생을 보면 그건 아닌 듯싶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을까. 운동이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듯이 미술도 마찬가지려나. 잘 그리려 하기 전에 많이 보고 느껴야 할까. 부족함을 안다면 꾸준히 보면 된다. 기초연습부터 하면 되고 죽어라 그려보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못한다. 애초에 책상에 앉아 당장 성과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면 스스로 참을 수 없다. 이 기초연습이 언제 어떤 결과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논리적인 식에 근거하여 풀어가면 결국 답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게 없다. 게다가 예술은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분야기에 계속적인 발전을 꿈꿔야 한다. 나는 그런 기약없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들고온 타블렛을 보고 순간 탐이 났다. 단순히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 마음에 든 건지, 이 도구로 그릴 그림을 꿈꾼 건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웹툰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림으로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있던 장소에서 함께 만난 사람과 나누어 먹은 음식, 주변의 분위기를 단순히 사진으로만 남기기 아쉬워서이다. 사진은 어떤 것보다도 장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허나 그림은 삐뚫뺴뚫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기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해도 그 대상에게 내 마음이 투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그때의 나를 알 수 있다.


      지하철 문 주변에 서서 노트에 지하철 풍경을 그림으로 끼적이는 사람을 보았다. 캬,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인가! 고1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캐릭터화 시킨 만화를 종종 그리셨다. 심지어 국어선생님이셔서 좋은 글과 귀여운 그림으로 보기도 좋았더랬다. 이리 보니 그림을 그리고픈 열망과 감정이 멋있어 보이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일기도 한다. 흠, 충분히 그렇다. 나란 사람은 허세와 멋부림으로 사니까. 그래도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좋은 태도라고 생각(이라 쓰고 합리화라 읽는다)한다.


      그림 생각을 하다가 책을 주문했다. 재작년에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제공받은 김충원의 <이지 드로잉 노트>다. 정해진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 하니 그림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이 폈다. 절반도 못 마치고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며 덮어버리고 말았다. 선 몇십 번 그어보고 재능을 운운하니 이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인기가 많은(그렇다고 하는) 블로거가 낸 <데일리 드로잉>도 함께다.


      역도 선수들은 첫 1년은 무게를 달지 않고 빈 바로 자세를 바로 잡는단다. 바는 쇳덩어리지만 역도동작을 하기에는 가벼운 편이다. 바만 쥐고 운동을 하면 힘을 주체 못하고 하늘로 휙휙 날려버리고 자세도 망가져버린다. 이렇게 1년 동안 자세 교정만 한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습관을 만드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포기했던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씨 교정 책도 다시 펴본다. 겨우 하루치 연습하고 말았다. 아, 이런 의지박약...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끼칠 정도다. 표지 왼편에 먼지가 쌓여서 물티슈로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책장 가장 위에 두었다.


      그놈의 허세 때문에, 연필로 필기해보고자 주황이 파버카스텔 연필을 한 다스나 사뒀다. 벌써 2년 전이다. 열두 자루 중 이제 한 자루를 절반 정도 썼을 뿐이다. 연필은 충분하다. 지우개도, 연필깎이도, 노트도 충분해. 이제 직접 쓸 차례다. 자자, 올해의 9할이 거의 지나간 시점에서 올해의 늦은 다짐을 해본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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