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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방울새 1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은행나무




2015-044, 045.


1. 오랜만에 진득-한 소설을 읽고 싶었다. 전에 읽은 책이 김영하의 <말하다> 같은 몇 쪽 읽지도 않고 바로 덮어버렸거나, 머리 쓸 일이라곤 하나 없이 읽는데 재미만 있으면 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도착의 론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동시에 읽은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주 지드으으으으윽한 책이어서 조금 재밌는 책을 찾아야 했다.


2. 그러던 중 눈에 띈 것이 황금 방울새. 무슨무슨 상에 약한 나는(재미로 읽는 책은 다 팔아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작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퓰리쳐상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책에 눈길이 계속 갔다. 신뢰하는 소설 전문 리뷰 사이트, 소설리스트에서 2015년 퓰리쳐상 수상작을 그 주의 소설로 선정하니, 작년 수상작은 과연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팍팍.


3. 주인공은 어린 학생 시오 데커. 불량한 친구와 사고를 쳐 학교의 부름으로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던 길에 갑작스런 비를 피하고자 들른 곳은 미술관이다. 둘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다가 그만 미술과 폭발 테러에 휩쓸리고 만다. 폭발 현장에서 시오는 노신사를 만나고 뭐에 홀린듯 '황금 방울새'라는 미술품을 가지고 탈출한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는 죽고, 아빠는 진즉에 집을 나갔으니, 시오는 순식간에 고아 신세가 된다. 부유한 친구의 집에도 살고, 미술관 안에서 만난 노신사의 사업 파트너와 함께 지내기도 한다. 갑자기 돌아온 아빠는 시오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고 거기서 평생의 친구(과연 그럴까...) 보리스를 만난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는 뒷전이고 온갖 나쁜 짓만 하고 다닌다.(술을 마신다는가, 약을 한다든가) 그러는 중에도 그림 '황금 방울새'는 꽁꽁 싸매진채 시오만 아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 전 세계는 테러사건 때 사라진 '황금 방울새'를 찾는다. 시오는 이 그림을 계속 간직하고자 노력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4. 요약이 엉망인 이유는 내가 원체 글을 못 쓰기 때문. 요약이 다소 긴 이유는 분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전자책 합본으로 읽어서 정확한 양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검색해보니 1권이 580쪽, 2권이 488쪽이란다. 지금 읽으려고 준비한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데, 이 두꺼운 책이 겨우 500쪽이다. 그러니까, 어휴, <황금 방울새>는 이 책 두 권 두께구나. 잠깐 교보문고에서 종이책을 봤는데 글씨도 생각보다 작다. 이거, 종이책으로 읽었으면 어느 세월에 다 읽었을랑가 모르겠다.


5. 앞에도 썼듯이, 이 책은 순전히 나의 허영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두껍고 뭔가 있어 보이는 책. 2014 퓰리쳐상 수상작. 가장 인상깊게 다가오는 광고문구는 '완독률 98.5%'다. 아니, 어떻게 완독률을 따지는 거지? 사실 여기서 완독률은 읽은 사람의 비율이 아니라 호킹지수를 말한다. <시간의 역사> 지속적으로 팔리는 스테디셀러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고 책장에만 꽂아둔 것을 빗대어 만든 말이다.(전자책에서 하이라이트나 책갈피 정보를 수집하여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의 역사>는 호킹지수 6.6%,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4%다. 43.4%의 <헝거게임>과 비교해서 이 책의 호킹지수 98.5%는 엄청난 수치다.


6.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많은 회원이 성장, 연애, 추리, 스릴러, 이외의 많은 장르가 뒤섞인 아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고 했다. 한번 잡으면 쉬이 놓칠 수 없는 책.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궁금해서 답답한 책. 과연 호킹지수에 걸맞게 사람들이 이 책을 그렇게 재밌게 읽었을까.


7.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는 완독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분량이 많은 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읽는 재미만 있다면 제아무리 두껍더라도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끝까지 읽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두꺼운데다가 읽는 재미도 없는 거야...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재의 기발함도 한몫하지만 특유의 전개감 때문이다. 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장황하게 늘여서 지루하지도 않게, 적당히.(참 어려운 기준이구만) 허나 <황금 방울새>는 늘어져도 너무 늘어진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자동차 보닛 위 엿가락처럼 말이다. 근래의 소설에는 질척거릴 정도로 구사하는 묘사가 특징이라고 하더라도(카더라임) 작가가 너무 말이 많다. 아직 프루스트는 읽지 못해서 묘사의 끝판왕은 모르지만- 내가 읽었던 묘사가 가장 장황한 소설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이다. 이 책은 내 기준에 있어 묘사가 엄청나게 길었지만 적당한 때 끊고 적당한 전개속도를 보여서 묘사가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도나 타트는... 지루할 정도로 말이 많다. 어느 하나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한다. 문장은 성긴 것도 문제지만 너무 빡빡해도 문제다. 아, 역시 나는 싸구려 독자다.


8. 문장 덕분에 이야기 진행도 느릿- 느릿. 사실 속도감만 아니라면 읽는 데 어려움은 없을 듯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 해봐야 사실 뻔할 뻔자다. 2권 후반부에 그림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스릴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냥... 총으로 위협하고, 도망치고, 웃고 떠들다 총쏘고 죽고 또 도망치는구나... 근 정도. 그분들은 분명 제대로 된 스릴러를 못 읽어본 게 틀림없다.


9. 결론적으로 카페 회원들이 말했던 성장, 연애, 추리, 스릴러 중 남는 건 성장뿐이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시오에게 사고 당시 얻었던 그림은 결국 과거의 유산이다. 그림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고 숨기는 등 많은 노력을 들인다. 시오 데커가 어떻게 과거를 떨쳐내는지를 무려 1,100쪽에 걸쳐 집요하게 파고든다. 옛날 것들이 없어지니 만사가 해결되더라- 식의 이야기여서 더욱 허무하다. 시오가 한층 성장한 것은 기쁘지만, 어찌보면 참 슬픈 이야기. 아, 갑자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기억의 쓰레기장으로 떨어지는 봉봉...


9.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한 달 넘게 시간을 투자하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 건진 책은 처음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도 후반부가면 엄청 재밌어서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읽었는데 <황금 방울새>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책이 되어버렸다. 더욱 웃긴 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서 시오가 수쪽에 걸쳐 독백하는 부분이다. 작가가 하고픈 말을 쭈욱 쓴 짧은 에세이의 느낌이다. 산다는 것은 저주와도 같다, 우연은 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의 핑계다... 등등. 이런 메세지는 인물과 이야기에 자엽스럽게 녹였어야 했는데, 본편의 마무리는 애매하면서 에필로그를 갑자기 수필로 끝내버리면 어쩌자는겨. 고전소설에나 써먹을 만한 수법 아닌가.


10. 아, 그렇군. 98.5%의 호킹지수는 마지막 장에 쓰인 그럴듯하고 멋져보이는 문장에 마구 하이라이트를 쳐서 나온 수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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