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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비채



오랜만에 읽는 일본 소설이다. 자의로 고른 책은 아니다. 독서 동호회에서 <문구의 모험>을 읽으려다가 너무 두껍다는 이유로 바뀌었다. 회장님이 교보문고에 돌아다니시다가 즉석해서 고른 책이다. 비채 출판사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최신간이기도 하다. 직전에 나온 <골든 애플>부터 찬찬히 읽어보려 했던 시리즈여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무엇이든 배달한다는 모토를 가진 가타기리 주류점이 무대다. 원래는 술을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받은 아들은 돈 되는 일을 하나라도 늘이고자 물건 배달도 시작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프롤로그로 시작해, 본편에서는 이상한 배달업무를 맡는다. 인기 절정 여자 아이돌에게 케잌을 선물해달라는, 아주 수상쩍은 의뢰,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엄마에게 뭔지 모를 모형을 배달해달라는 어린 아이의 의뢰,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악질 상사에게 악의를 전하고 싶다는 의뢰. 배달 업무를 하면서 주류점 주인 가타기리는 그가 잊었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자신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알아챈다.

일본 소설, 그리고 잡화를 다루는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곤조곤한 일본 소설 특유의 문장과 서술, 묘사가 돋보인다. 진중한 이야기가 주가 아니기에 페이지도 금세 넘어가는 편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빼고는 단점이 너무 크게 보인다. 소설은 총 다섯 장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각 장은 독립적인 이야기로 그 안에서 완결되는 형식이다. 등장한 소재들이 뒤에 다시 등장하여 미스터리한 프롤로그를 마무리한다. 전체를 만들기 위해 탑처럼 아래부터 이야기를 쌓는데, 결정적으로 각 이야기의 매력도가 떨어진다. 소소한 감동도 없고 터져나오는 교훈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가끔 서로의 조언을 구하며 언뜻 선문답 같은 대화를 한다. 정상에 위치한 여자 아이돌은 물건 배달을 온 가타기리에게 대뜸, 지금의 성공적인 삶과 엄마와의 평범한 인생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묻는다. 이에 가타기리는 그렇게 묻는 자체가 어느정도 결심한 것이 아니냐며 다소 오글거리고, 어쩌라고 반문이 드는 답을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와 나눈 대화, 오키나와 해변을 보면서 드는 생각, 손자를 위해 몰래 선물을 보내는 할아버지의 행동, 분명 무언가 담겨 있는데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모양새다. 전체로는 마지막을 위한 포석 느낌의 이야기들인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게 문제다. 결말로 닿는 사이의 완급조절도 실패한 인상이다.

가타기리 사장 본인의 이야기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아쉽다. 분명 매력적인 인물임에도(초강력 츤데레) 묘사가 충분했다면 더 정감가는 인물이 되었으련만. 그의 과거를 흐릿하게 표현할 거면 단호하나 격정적이었어야 했다. (주류점의 전 사장인 아버지 이야기가 없어서 더욱 아쉽다)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이 깊고 정이 많은 인물은 분명하지만(후세이 아줌마와의 대화는 정말 정겹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 쓰고 보니… 하나 엉뚱한 생각이 드는데. 가타기리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다. 단순한 배달원일 뿐. 배달이라는 행위에서 수신자와 발신자 각 주체가, 배달되는 물건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리라. 내내 철저히 배달원- 즉 타인의 입장에 서 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가타기리도 배달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점이 이야기의 변곡점이라 해야 할까. 이것 또한 유치찬란에 오글거리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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