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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열린책들



0. 기대보다 너무 실망스럽게 다가온 책이어서, 이 실망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1. 분명히 읽은 기록은 있으나 기억에는 없는 책이다. 5년 전인 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읽었다. 책 표지도 기억난다. 한참 독후감을 남기던 때에 글씨 한 자도 남기지 않았다.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데 왜 머리에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세상이 훤희 뜨이는 느낌을 받을까?

2. 5년 동안 다시 읽은 책이 딱 세 권 있다. <화성 연대기>는 감상은 없지만 두번 모두 너무나 재밌고 감명깊게 읽었다. 두번째 감상이 더 장황했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좋았다. 웬만하면 재독을 하지 않는 가벼운 독자인 나에게 여러번 읽는 책은 뜻깊었다. <앵무새 죽이기>만 빼고.

3. 사회적 소수자를 어린이의 천진한 시점에서 따듯하게 그린 이야기...인데, 이미 이런 주제로 쓰인 책이 많이 나왔다. 소설이라는 특징상 주제가 우회적으로 드러나지만, 역사나 논픽션을 통해 다뤄지는 이야기가 더 충격적이고 인상깊다.

4.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만 파악하는 게 아닌, 소설이 쓰였던 시간, 공간 배경을 함께 읽어야 진짜 읽기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재미없게 읽은 이유는 소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이다.

5. 소설을 통틀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역시 제목이다. 왜 <앵무새 죽이기>인가? 소설 중간을 보면 언뜻 힌트가 보인다.

젬과 스카웃은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사냥총을 주면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앞서 맞힐 수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디 아줌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앵무새는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소수의 차별 받는 이들도 남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기에 미워할 필요가 없다, 는 도식일까? 어치새와 앵무새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위 글귀만 봐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지 안 끼치는지다. 그럼 이 기준은 결국 인간이 만든 게 되고, 같은 맥락으로 사람을 가르는 기준도 누군가 만들고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책의 주제가 소외된 소수인을 향한 아름다운 시선이라고 한다면, 그외의 이들은 - 가령 폭력적인 범죄자는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까. 그들은 어치새인가, 앵무새인가?

6. 역시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이 달리면 이모양이 된다. 여러분 공부하세요...

7. 젬은,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그냥 사람들만 있다는 스카웃의 말에, 사람들끼리 서로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를 경멸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자기도 네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면서. 젬은 과거의 이상적인 생각이, 나이를 먹고보니 틀리다고 말하는 셈이다. 젬은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하는 일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톰 로빈슨이 석연치않은 유죄선고를 받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런 젬이 저런 말을 하다니. 현실을 알았기에 더욱 노력해서 편견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럴수밖에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

8. 책을 덮은 후 느낀 실망감은, 책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공부와 생각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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