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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2007)

by 양손잡이™ 2017. 2. 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난민 캠프에서 구호가 시작된다. 의료진은 난민의 상태를 보고 그들이 살아날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구분한다. 무자비한 행동이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한정된 자원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가망이 없는 이들에게 간호사는 그들의 아이는 너무 약하고 배급이 빠듯하니 손목밴드를 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이 강하게 부딪혀 모순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구호현장에 장 지글러가 서 있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우석훈은 그를 학자이면서 활동가이며 전문가라고 평한다. 학자로서 제네바 대학 교수와 제 3연구소 소장으로 역임했다. 활동가로서는 스위스 사회당원으로 일하고,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다. 국제적 기아문제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시각이 뛰어나고 저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보여준다.


책은 저자의 아들 카림과 대화하는 형식을 취한다. 선진국은 먹을 것이 넘쳐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만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아이들이 왜 굶어가냐고 아들이 질문하고 저자가 이에 답을 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질답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기아 지역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가 겪은 일화뿐만 아니라 UN에서 발표한 통계를 소개하면서 객관적인 지표를 말하기도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기아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한다. 전자는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한다. 후자는 더딘 경제발전, 인프라의 미정비로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저자는 FAO와 다른 구분을 한다. 인간이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저자가 묘사한 기아의 예시를 살펴보면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모두 인간이 관련된다. 앞에서 경제적 기아의 예시로 든 전쟁, 자기 민족을 망치는 군벌 우두머리, 나라를 지배하는 사회구조,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거물급 곡물상이 결정하는 농산물 가격 등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 세계의 기아를 키운다. 저자가 세계 기아의 주범으로 꼽은 신자유주의도 이와 궤가 같다. 일부 자연재해도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심이 들었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아마존 삼림을 해치는 산업도 자본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를 통해 희망을 보기도 했다. 이 젊은 개혁가는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비효율적인 행정조직을 정비하고 인두세를 폐지했다. 철도사업을 진행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했다. 그는 부패가 심한 정치권, 턱없이 낮은 국내 생산량, 매년 적자를 보이는 무역수지를 타파하고 나라를 차차 개혁해나갔다. 외국세력에 의해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저자가 언급한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 방법의 실례이기도 하다.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인프라 정비)


일부 사람들은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한다는 엉터리 논리를 믿기도 한다. 심지어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조차 이렇게 믿는다. 기아의 원인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려는 선진국의 비겁한 변명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논리를 믿는다. 학교에서 기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아에는 구체적인 원인이 있음에도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만을 갖고 사회에 나오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 대응을 하기 일쑤다. 우리가 사회와 경제 시스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깊게 사고할 필요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7년 전에 발간된 책이지만 그동안 나아진 점이 없어 보인다. 1999년 8억 명이었던 영양실조 사람의 숫자는 2010년에 이르러 10억에 이른다. 태동하던 신자유주의는 이미 전 세계에 위력을 과시하고 있고 광풍에 휩쓸려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전 세계가 나서서 구호활동을 진행한 지 몇십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세계의 기아는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는다. 그 소를 소비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책은 기아를 없앨 방법을 명시하면서 독자에게 우리의 행동과 사고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자고 설득한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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