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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신형철 (마음산책, 2014)

by 양손잡이™ 2014. 11. 2.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마음산책



092.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근사한 영화관련 도서가 두 권이나 출간되었다. 하나는 소설가 김영하의 <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하 실험)이다. <보다>는 책 소개에는 써있지 않지만 보고나니 글의 출저가 대부분 영화잡지 씨네21인 듯했다. 이에 나는 출판사(문학동네)와 홍보담당자에게 엄청 분노한 바 있다. 물론 김영하의 글은 그 자체로 매우 좋다. 다만 씨네21 구독자로서 왠지 모를 화가 날뿐이다. (사실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한몫 했다) 다행히 <실험>은 <보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소개부터 씨네21발 글임을 알린다.


  굳이 두 책의 만족도를 말하자면,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겠다. 다시 말하지만 김영하의 글이 싫었다는 뜻이 아니다. 김영하도 나름대로 재밌는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여서 그런지 전에 봤던 산문과는 언뜻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에 읽었던 산문은 보통 생활이나 문학, 문화을 말했지만 <보다>는 익숙한 영화에 대한 글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신형철은 그와 전혀 반대의 글을 써냈다. 씨네21을 구독한 지 벌써 4년이 다되어가는데 신형철의 글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 조그마한 아이패드 미니로 조그마한 글씨를 보자니 눈이 아파서 멋대로 페이지를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에 비해 축 처지고 무거운 글이다. <보다>가 영화를 다소 다르게 읽었다면 <실험>은 깊게 파고든다. 자신은 문학평론가기에 영화의 서사를 주로 다루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와 서사의 흐름, 인물 사이의 상징에 대해 쓴다.


  (저자는 평론이 아니라고 했지만)평론집에 대해 독후감을 쓰자니, 저자가 이미 헤쳐놓은 영화에 대해 딱히 분석할 거리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더 이상 글을 길게 쓰기란 무리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리도 바보멍청이인 걸...  여튼,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고 진도가 빨리 나간 책이다. 어렵다고 한 독자들이 많은데 아마 소개된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몰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말이 나와서, 책에 소개된 영화를 말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부 - 사랑의 논리 : <러스트 앤 본> <로렌스 애니웨이/가장 따뜻한 색, 블루> <시라노; 연애조작단/러브픽션/건축학개론/내 아내의 모든 것> <케빈에 대하여> <아무르>

2부 - 욕망의 병리 : <피에타> <다른나라에서> <뫼비우스> <우리 선희>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

3부 - 윤리와 사회 : <더 헌트> <시>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늑대소년> <설국열차>

4부 성장과 의미 : <스토커> <머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 <노예12년>

5부 - 부록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사랑니>


  (책이든 영화든)메타북을 재밌게 보기 위해선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야 하고, 소개된 작품들을 많이 감상할수록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 선택은 매우 좋았다. 반 정도의 영화를 봤으며 나머지는 스토리 요약이나 평론이라도 보아서 흥미를 가졌던 작품들이었다. <케빈에 대하여>나 <아무르>, <스토커> 글은 내가 생각한 것을 더 보강시켜주다. 영화를 보고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피에타>나 <다른나라에서>, <멜랑콜리아> 글은 영화를 깊게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보지 못한 영화라도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모두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워낙 스토리 소개를 잘하기도 했거니와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을 해줬으니, 사실 새끼 새마냥 입만 벌리고 먹이가 입에 들어오기만을 바라면 될 정도다. (사실 이는 메타북의 최대 단점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영화를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일은 이 세상 거의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보다>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색다른 시선을 원한다면 <보다>를, 조금 더 깊고 심각한 시선을 원한다면 <실험>을 추천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당신이 이 두 책의 존재를 안 순간 한 권을 취사선택할 수 없음을. 결국 두 권다 볼 것임을, 내 장담한다.


  ※ 나 혼자였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신형철이라는 저자의 무거움과 제목의 불가해성이 가장 큰몫을 했다) 책 모임에서 한번 읽어보자 했더니, 오 웬걸, 나에게 이렇게 잘 맞는 책이 있는가 했다.덕분에 평론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도 심어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쓴 첫 글이 이따위 수준의 독후감이라니! 오호 통재라) 신형철에 반해 저자의 전작 <몰락의 에티카>를, 평론과 비평에 반해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나 비평집(이번에 산 백지은 비평집 <독자시점>)을 읽을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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