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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14년 4월 24일 금요일 잡담

by 양손잡이™ 2015. 4. 25.

산책하고서 우울을 가득 담아.


1. 춥다. 4월을 넘어 5월로 가는 길목의 지금에,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갑다. 달리다가 잠시 멈춰 언 손을 주머니에 넣어 녹인다.

2. 기분이 묘-하고 멍-하다. 특히 이번주가 심하다. 며칠째 몸살과 목감기가 겹쳐 병든 닭마냥 비틀거렸다. 일하다가 문득, 걷다가 그냥 픽!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깟 연차. 내 몸 안 좋은 것까지 참아가며 일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다 같이 힘들다고 내가 안 힘든 건 아니니까...

3. 컨디션 저하는 저번주부터였다. 정확히는 주말에 밀린 시사인을 보면서부터. 잠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들어간 커피숍에서, 세월호 1주기 관련된 기사들을 읽었다. 커버스토리가 잡지의 절반을 차지했다. 마침 광화문에서 세월호 추모식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생존학생과, 피해학생 부모님의 인터뷰. 죽은 오빠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단원고에 입학한 여동생.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들은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손가락질하는 모습. 세상이 밉고 너무나 서러워졌다. 문득 내가 여기 앉아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 전 대학로에서 받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 걸고 다녔지만 그 의미를 어깨에 짊어질 그릇이 인간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다. 건너편에 앉은 아이가 부모님과 얘기하면서 꺄르르 웃고 재롱피우는 모습을 보니, 저 어린 새싹을 위한 밭을 잘 고르고 다지기 위해선 특별하진 않지만,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나는 생각이 든다. 기분은 추스렸지만 그때 흘린 눈물이 일주일동안 응어리진 느낌이다.

4. 킥보드로 신나게 달리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네 시간 가까이 죽치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달한 핫초코만 두잔 연달아 마셨지만 머리가 말끔히 개이진 않는다. 모든 네트워크를 끊고 내 안으로 침참하면 속이 가라앉을 줄 알았건만, 더욱 열이 난다. 재미를 위한 소설, 쉬운 인문서, 철학 대중서를 가져갔는데 결국 뒤적거리다가 읽던 철학서적(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렌즈)을 이어 읽었다.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찾기 위해 나선 산책길이었지만 철학을 접하니 내 어째 내 자신을 타자화시켜 점점 괴리감이 심해진다. 코기토 에르고 숨을 논파해버린 비스겐슈타인의 논리를 보고 그만 아, 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에 대한 막심한 후회가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명언을 느즈막히 깨달았다. 끝없이 의심한다는 데카르트의 '회의'가, 일상에 대한 권태로 인해 그 뜻이 변해 모든 것에 회의감이 느껴지고 싫증만 난다. 내가 철학은 무슨. 관념론과 인식론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배우려는 의지조차 없는 내게, 늑대에게서도 철학적 사유를 얻은 마크 롤랜즈는 내게 버거운 이이다. 킥보드도 고쳤으니 수원역 알라딘 중고매장에 안 읽는 책을 다 팔아버려야겠다. 고전, 스테디셀러 빼고 모두 처분할 예정이다. 책 자체에 지친 기간이 이렇게 길어진 적은 책을 열정적이고 재밌게 읽은 2010년 이후로 처음이다. 벌써 4개월째라니. 빌빌거리는 나를 때리고 싶은 지경이다.

5. 우울이 한층 심해진 건, 오늘 회사에서 받은 메일덕이다. 분명 7월로 예정되었던 미국 출장인데, 담당자는 5월 23일에 출국하라고 전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것도 아무런 통보없이 갑작스레 일정이 바뀌니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없도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여자친구.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거의 그 기간만큼 떨어져 있는 것도 너무나 슬픈데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예상보다 반으로 줄어버리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나로선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도 같은 사태다. 3시쯤에 메일을 봤으니, 남은 7시간의 근무 동안 끝없이 화내고 분노하며 일했다. 차장님께 찡찡거리고 담당자에게 개인 사정으로 일정연기를 부탁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람... 일마치고 잠시 목소리를 들으니 울고 싶어져 얼른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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