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지음/마음산책 |
그렇게 호평을 받았던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를 봤었는데, 별로 감동이 없는 거예요. 참 불안했죠. 남들은 그렇게 재밌게 봤다는데 나는 흥미위주의 독서만 하다가 대중도 못 따라가는 거 아니냐면서. 그 이후로 장르소설을 접고 일반소설로 넘어온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읽는 것도 대중소설들 뿐이니 별 다를 바는 없는 것 같군요. 그냥, <밤은 노래한다>가 저한테 안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김연수 작가도 별로였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서 느낀 건, 이 작가 소설보다는 수필이 더 잘 어울리지는 않을까, 였습니다. 사실 지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고 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요. 책읽는데에 소홀한 것도 있지만 여튼 집중력이 좀 덜하더이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느낀 건 아, 이 작가, 문장 하나는 정말 맛깔나게 쓰는구나, 였습니다.
소설가 자신이 시와 함께 살았던 젊은 시절, 퇴색한 청춘의 향기, 옛 동네, 사람에 대한 추억, 지식을 앞세워 대학가를 점령했던 그때,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고민, 아름다운 또는 슬픈 사랑과 이별 얘기, 깝깝한 군시절. 어떤 때는 행복했고, 어떤 때는 슬펐고, 어떤 때는… 글쎄, 말로 전해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글로 구성된 아름다운 책. 아마도 차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또 읽을 것 같아요. 이렇게 멋진 책에는 감상을 쓰기에 제 손가락이 부끄러우니 발췌문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아마도 같은 해 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걸어 소설가 김소진 선배가 암으로 죽었으니 문상가자고 말했다. '절대로 가면 안돼!'라는 문장이 온몸으로 육박해왔다. 왜 가면 안되는데?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그 느낌에 반항하듯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 책 날개에 실린 사진을 확대해놓은 영정에 두 번 절한 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간 앓았다. 소설이 뭔데? 청춘이 도대체 뭔데? 다 귀찮아졌다. 지긋지긋했다. 남은 평생 소설 따위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은 뒤, 문방구에서 이력서 용지를 사와서 여기저기 취직원서를 냈다. 그리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일산에서 장충동까지 매일 왕복 세 시간의, 여행에 가까운 출퇴근을 했다. 버스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보노라면 때로 김소진 선배의 영정이 떠올랐다. 겨울 버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입김이 어린 뿌연 유리창 위로 미끄러지는 한 줄기 물방울 흔적 사이로 청춘은 영영 빠져나갔다. (41, 42쪽)
그렇게 내가 살아했던 이들이 국화꽃 떨어지듯 하나 둘 사라져갔다. 꽃이 떨어질 때마다 술을 마시자면 가을 내내 술을 마셔도 모자랄 일이겠지만, 뭇꽃이 무수히 피어나도 떨어진 그 꽃 하나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날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깨어나면 알게 될 일이다. 가을에는 술을 입안에 털고 나면 늘 깊은 숨을 내쉬게 된다. 그 뜨거운 숨결이 이내 서늘한 공기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동안 허공 속으로 흩어진 내 숨결들. 그처럼 내 삶의 곳곳에 있는 죽음들, 가끔 그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43쪽)
작년 여름 말복 지나고 처서가 오기 전의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서울과 달리 제주도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맑은 날이 계속 이어졌다. 구름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 바다의 빛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순간순간 바뀌어갔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52, 53쪽)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파스칼의 회심과 같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라는 문장에 해당하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단숨에 깨달으면서 파스칼의 지복과 비슷한 감정을 잠시 느꼈다는 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글을 쓸 수 있다. (66, 67쪽)
(2011년 12월 4일 ~ 12월 6일,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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