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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했더랬다. 소설에서 무엇을 배우려면 차라리 학교를 가라! SF 소설은 로봇이나 미래기술에 따른 부작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호러나 판타지는 그런 여지가 적은 게 사실이다. 덕분에 이번 책은 300여 쪽 되는 책에 붙인 포스트잇은 3개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킹 작가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었다!
세상이란 놈은 이빨이 있어서 그놈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너를 물어뜯을 수 있다. (11쪽)
트리샤 맥팔랜드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특급 마무리 톰 고든의 광팬이다. 아이는 이혼한 어머니, 오빠 피터와 함께 숲으로 여행을 간다. 여행을 싫어하고 이혼으로 인해 많은 상황이 바뀐 피터는 이 모든 게 짜증나기만 하고 툭하면 어머니와 말다툼하기 일쑤다. 그날도 셋이서 숲을 걷고 있었다. 트리샤는 소변이 마려웠지만 엄마와 오빠는 말다툼을 하느라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트리샤는 곧 따라갈 요량으로 길에서 잠시 벗어나 볼일을 본다. 그리고 돌아가려다가 앞에 둘이 걷고 있는 길과 만날 것 같은 새로운 길을 본다. 그리고 트리샤는 그 길로 걷는다. 결과는? 길을 잃고 만다. 추위와 허기, 설사와 발열, 극성스런 벌레때 때문에 고생하는 트리샤. 게다가 밤이 되자 트리샤의 주변엔 그것이 아이를 노리며 배회한다. 트리샤를 지켜주는 건 오로지 라디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톰 고든의 활약뿐이다. 이제 트리샤는 걷고 걸어 엄마와 아빠, 오빠를 만나야 한다.
킹은 뛰어난 스토리텔러이다. 스토리 진행만으로 충분히 읽는데 후회하지 않는 작가 중 하나이다. 게다가 이분은 이야기 뿐 아니라 상황묘사와 심리묘사 또한 뛰어나다. 초반에 트리샤가 구릉으로 굴러 떨어지는 대목이 있는데 아이가 아파하는 게 내 피부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그 느낌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다 움츠러들더라. 단 며칠 간의 일을 250쪽 정도나 표현하고 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외서는 번역이 중요하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최악의 예는 역시 「얼음과 불의 노래」이다. 아마 원서와 번역본을 따로 읽으면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말 다했지. 여태까지 읽은 외서 중 번역이 가장 잘 되는 것은 역시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다. 이렇게 쓱쓱 읽히는 책은 쉽게 만날 수 없다. 물론 킹의 문체가 나에게 잘 맞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은 이들이 킹의 번역본은 상당히 높게 평가하니 잘 되긴 잘 된 것 같다. 게다가 뛰어난 단어 선정이란. 외서에서 '깔쭉깔쭉한 구멍'(37쪽)이란 표현을 볼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 일반인도 잘 쓰지 않는 단어지 않은가.
내가 느낀 이 작품의 최악의 단점은, 우습게도 발상이다. 킹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괴기한 비일상이 주는 괴리감이다. 특히 이런 장점은 단편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의 <토드 부인의 지름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느꼈다. 킹의 글을 보는 큰 이유가 없는 글이었다.
트리샤가 걷는 길은 어딜로 향할까? 집? 아니면 더욱 깊은 숲? 이제 트리샤는 걷고 걸어 가족과 재회할 수 있을까? 트리샤를 뒤쫓는 존재,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끝까지 궁금해 하시라. 확실히 재미는 보장하니까. 자, 그럼 모두 주문을 외워보자.
"와인드업한 맥팔랜드, 이제 공을 던집니다." (133쪽)
아, 이건 트리샤만의 주문이니, 자신의 주문을 읊조리기로 하자. 그리고 힘들 때마다 마음 속으로 되뇌이자.
(2011년 7월 13일 ~ 2011년 7월 16일, 284쪽)
스티븐 킹 저, 한기찬 역,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황금가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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