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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장강명 (2015, 문학동네)

by 양손잡이™ 2022. 12. 29.

기본적으로 그렇게 재밌게 읽은 책은 아니어서 딱히 할말이 없다. 그렇다고 엄청 재미 없게 읽은 책도 아니어서 깔 말도 없다. 나에겐 되게 애매한 책이었.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대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이다.
출판사 여직원이 투고 작품의 순서를 뒤죽박죽 어그러트렸듯이 이 책도 시간 순서대로 맞춰져 있지 않다. 엉망진창 앞 뒤 왼쪽 오른쪽 가릴 것 없이 마구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작가가 정교하게 짜놓은 틀 안에서 어느정도 시간적 연대기가 그려진다.

 

소설을 읽으면 가장 먼저 느낄 것은 분명 이러한 특이한 형식일 것이다. 하지만 우주알을 언급하면서 시간에는 전후의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테드 창이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 바 있다. 물론 다른 층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긴 이 소설은 제목부터 신비스럽기도 하다. 당신의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니. 우주알이 내 안에 들어와 함께 세계를 조망하는 상상을 하니 우습기도 무섭기도 하다. 우리는 뭐든지 완벽하게 기억할 수 없고 자신의 기억을 역사책처럼 시간순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저 파편적이고 자그마한 기억의 조각들만이 여기서 팡 저기서 팡 그렇게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앞뒤 다 뒤엎는 소설의 형식이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잘 표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도 학창시절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알 수 없다. 소설 마지막 남자의 고백 편지에서는 학교폭력이 아닌 그저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옆에서 함께 있던 여자는 학교폭력이 의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처럼 제각각이라 객관적이지 않고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이야기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시간 때 순으로 나열했다면 엄청 단순한 이야기였을텐데 이렇게 이야기와 형식과 제목과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니 꽤나 근사한 소설로 탄생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신기하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역량 있는 신진 작가들을 발굴해온 문학동네작가상 제20회 수상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장강명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로, 오로지 시간을 한 방향으로 단 한 번밖에 체험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재 방식, 그 예정된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설적 모험을 감행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남자, 그 남자의 사랑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여자,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자신의 아들은 그를 괴롭힌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 어머니, 세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시간과 기억, 속죄라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나간다.
저자
장강명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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