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듣는 작가다. 책 제목도 2022년 올해의 소설 후보에 올라와서 알게됐다. 간간히 독서 커뮤니티에서 보이기도 했다. 올해의 뭐뭐, 여기에 올라와 있으면 안 읽을 수 없지. 1995년생의 젊은 작가다. 가로로 짧고 세로로 긴 판형이다. <가만한 나날>도 똑같은 판형이었던 것 같은데. 민음사에서 이 판형으로 나온 책은 모두 평이 좋았다. 믿고 읽어도 되겠군?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아주아주 좋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새 책을 들여놓아야겠다. 2022년 올해의 소설에 끼인 이유가 충분하다.
3. 젊어서일까, 상상력이 마음에 든다. 표제작 ‘유령의 마음으로’부터 보면, 나와 똑같은 외형의 유령이 눈앞에 등장한다. ‘빛이 나지 않아요’는 해파리에 닿으면 해파리로 변하는 질병이 성행하는데, 주인공은 이 변하는 걸 도와주는 일을 한다. ‘여름은 불빛처럼’에서는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원룸 한가운데서 나무가 된 - 문자 그대로 바닥에 뿌리를 내린 남자가 등장한다. 일반문학에서 판타지적 설정을 가지고 이만한 이야기와 주제로 소설을 쓰다니, 탄복할 만하다.
4. 많은 소설이 그렇듯, 소설 속 인물은 결핌과 슬픔, 좌절을 느끼면서도 부정하고 숨긴다. 그러다가 타인 또는 사물에 비춰지는 자신의 감정을 보고 직시하게 된다. 자신을 똑 닮은 유령에게서 반사된 자아를 보거나(’유령의 마음으로’)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숨겨둔 감정을 깨닫는다(’낯선 밤에 우리는’). 때론 얕은 관계를 맺으려다가 빠그러질 때가 있지만(’집에 가서 자야지’),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의 관계는 딱 거기까지인 거 아닌가, 싶다.
5.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작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해파리로 변하지 않는 고객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돌본다. 직장에서 한 소리를 들어도 말이다. 도마뱀을 김재현이라고 부르고, 길고양이에게 성철, 병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인물들. 나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타인에게 위안을 준다.
6.
왜 하필이면 동면을 하신다는 거예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하룻밤보다 많은 밤들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의외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_187쪽, ‘동면하는 남자’에서
우리에게는 모두 마음 깊이 숨기고픈 이야기가 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모두 잊으려고 한겨울 동면에 들어가기도 하고, 해파리로 변할 결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지만, 어설프고 얕지만 타인과의 관계와 연대를 통해 응어리가 사라지고, 때론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7.
덧붙여 두고 싶은 건 어째서 좋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느낌에서 멀어져 버릴 듯한 부분들이다. _287쪽, 작품해설에서
작품해설을 쓴 황예인 평론가의 말처럼, 설명하려 할수록 좋은 느낌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원래 좋은 작품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법이다. 다들 그냥, 부담없이 재밌게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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