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여러 분야의 책을 기웃대면서 나는 제대로 읽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글씨를 읽기만 하고, 감상은 겨우 300자를 넘기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는 문장과 이야기가 있나? 내 삶에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사유를 했는가? 어느 하나 제대로 남지 않고, 겨우 독서기록 한 줄만 남을뿐입니다. 읽기에 염증이 생기는 요즘, 아래 문장을 접하고 바로 책을 들었습니다.
다독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독을 자칫 잘못 쓰면 과독이 됩니다. _6쪽
책은 아주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책은 좋은 거니까, 많이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에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날리죠. 책을 펴자마자 이런 문장을 만나니, 작가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서 한장 한장 빠르게 넘겼습니다.
저자는 기자기계발 브랜드인 ‘책과강연’의 대표 기획자입니다. 강연에서 읽기와 쓰기, 출판을 말해요. 브랜드 홈페이지 왈, ‘책과강연’은 책을 통한 변화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책을 쓰는 행위를, 자신을 넘어서는 도전 의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목차를 보고는 통렬한 반성을 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렇습니다.
- 다독만 하면 뭐합니까?
- 제대로 읽습니까?
- 책, 이렇게 읽으니 발전이 없다
- 읽기만 해서는 시간 낭비다
- 전체를 읽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합리적입니다. 저처럼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고르면 안된다는 것이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저 다독만을 하니 어느새 읽기에 실증을 느끼게 됩니다. 탑처럼 쌓인 책은 읽는 즐거움을 빼았아갑니다.
저자는 읽기보다 쓰기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역발상을 합니다. 쓰기 위해 읽어라. 내가 느끼는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책을 골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눈 앞에 있는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실타래를 푸는 건 자신의 경험과, 독서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합쳐 글쓰기라는 결과로 출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것이죠. 저자에게 책은 쓰기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입니다. 자신에게 영감과 발상을 주는 훌륭한 문장과 인사이트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요, 이 책은 글과 책 쓰기를 통한 자기계발서였던 거시에요.
독서인들에게 유구한 전통의 의견 대립이 있죠. 즐기기 위한 독서와, 자기계발로서의 독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둘 다 포용하면서 살지는 모르겠지만요, 적어도 저는 전자- 즐기고 향유하는 독서를 선호합니다. 자기계발을 위해 책을 읽다보면 책의 디테일한 내용보다,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취할 수 있거든요.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죠. 2019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야마구치 슈, 다산초당, 2019)>입니다. 이 책은 부제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에 걸맞게, 길고 복잡한 철학사는 접어두고, 개념과 사상만을 가져와서 간단히 소개하고 이를 비즈니스와 경영, 삶의 태도에 접목시키려고 하죠.
하지만 '제안 - 비판 - 재제안'이라는 철학사(위 책, 11쪽)를 배제하는 순간, 이 책은 가치를 잃습니다. 철학사를 모르면 철학사조의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고, 결국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문장은 그저 있어보이는 문장이 될뿐입니다. 철학의 개념을 쉽게 풀어쓰고 현실에 적용한 점은 좋지만, 맥락 없이 동떨어진 철학 개념은 그저 지식을 위한 단순한 단어로 치환될 뿐입니다.
목적 있는 독서를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쓰기 위해 읽으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상당히 강력합니다. 현재 자신의 문제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과정에 책이 있다면, 그 책이 수단이 됐든 목적이 됐든, 책의 가치는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책은 지식을 담는 캐리어지 지식 그 자체는 아니니까요. 수집한 문장을 필요에 따라 쏙쏙 골라서 사용하는 방법은 정석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즐기기 위한 독서는 저를 기쁘게 만듭니다. 제 마음은 갈대 같아요. 읽고 싶은 책도 바람에 흔들리듯 쉼없이 바뀌죠. 역사를 읽었다가, 그때에 맞는 철학서적을 폅니다. 뒤이어 당시에 쓰인 고전문학을 읽다가도 때마침 출간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단편집을 읽기도 하고, 제 마음가는대로 책을 폅니다. 목적없이 그저 주변을 서성거리는 느낌이지만, 굳이 길이 일직선일 필요는 없잖아요. 멀리 떨어져서 긴 세월을 조망해보면 저만의 굽이진 길을 조금씩은 걷고 있지 않을까요. 굽이굽이 휘어진 길도 길, 걷는 것 자체가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책장에 쌓인 책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배우기 위해, 즐거워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위해, 또는 연설을 하기 위해, 회상하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 현재를 읽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 독서하라.
(<종이책 읽기를 권함> - 김무곤(더숲, 2011),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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