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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미스터리한 범인, 혼란스러운 주인공, 그리고 '데드맨'

by 양손잡이™ 2023. 6. 19.

데드맨 - 가와이 간지 (작가정신, 202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한 화자의 일기로 시작합니다. 자아 정체성을 잃은 자의 혼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미치광이의 글 같기도 하지요.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이를 폭로하면서, 지금 이 일기를 읽는 독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한없이 이상한 말들을 내뱉습니다. 그놈이 저지른 잔인무도한 짓을 세상에 알리리라는 굳은 다짐과 함께, <데드맨>은 비로소 시작합니다.

 

형사 가부라기 데쓰오는, 어느날 엽기적인 살인 사건 현장을 목도합니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를 발견한 것이지요. 값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훔쳐가지 않았으면서, 머리만 깨끗이 잘려 사라졌습니다. 단순히 변태 살인마의 소행이라 생각했지만 사건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몸통부터 시작해 팔과 다리가 사라진 시체까지, 여섯 번의 연쇄살인이 벌어집니다. 가부라기와 동료들은 여섯 개의 신체 부위를 하나로 합쳐 새로운 생명 - 일명 데드맨을 만드려는 목적으로이 연쇄살인이 벌어졌다고 추측합니다.

 

한편, 한 사람이 병원에서 깨어납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의사는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데드맨이라고, 여섯 개의 신체를 기워만들어 새롭게 태어난 이라고, 말이죠. 혼란스러운 데드맨은, 그래도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고는 열심히 재활훈련을 합니다. 그와중에 어떤 인물을 만나고, 자신이 데드맨으로 새로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잔인하고 엽기적으로 여섯 명을 죽인 ‘범인’을 알리기 위해 가부라기에게 메일로 제보합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뒤로 갈수록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맞닥뜨리게 되죠. 대여섯 페이지를 남기고 뒤통수를 팍! 치는 반전을 위한 소설은 아니기에, 2/3 지점을 지나면 어느정도 범인과 데드맨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의 정체보다 중요한 건, 진실이 드러나면서 알게되는 소설 전체에 깔린 여러 장치이죠. 복선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프롤로그에서 혼란스러운 말을 내뱉는 이가 누구였는지, 중간중간 왜 이런 서술과 묘사가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쉽다고 꼽는 것들은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가부라기와 그 동료들은, 엽기적인 살인 앞에서 만화와 소설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일본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열혈 형사물의 클리셰라고 할까요. 또한, 살인의 당위성은 이해하나, 완전범죄에 가까운 범인의 기술(?)은, 단순히 소설의 결말로 가기 위한 장치로 전락해버립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힘이 대단한 소설입니다. 데뷔작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죠.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는 열혈물을 좋아하니까요, 가부라기 시리즈를 계속 읽어보고 싶네요. 후속편으로 <드래곤플라이>와 <단델라이언>이 출간되어 있으니, 바로 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데드맨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상 대상 수상작 『데드맨』의 리커버 에디션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기수이자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대상’의 심사위원이었던 아야쓰지 유키토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에 도전하는 기개가 훌륭하고, 속도감 있는 구성이 대단하고 놀랍다”라고 평가하며 기존 미스터리 소설을 뛰어넘는 새로운 천재 작가의 탄생을 예고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거침없고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 전개로 입소문을 타면서, 2013년 출간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등 추리 미스터리 분야에서 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도쿄에서 여섯 번에 걸쳐 연속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각각의 신체 부위가 사라진 여섯 구의 시체와 중년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치밀하고 완벽한 살인 방식 외에는 별다른 단서가 없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은 사건 현장에서 감정이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흔히 범인이 시체에 손상을 가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피해자에 대한 원한이나 분노, 변태적인 광기나 흥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범인은 단지 신체를 잘라내 가지고 간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범인이 원했던 것은 피해자의 목숨이 아니라 신체였던 것일까. 형사 가부라기가 진두지휘하는 수사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가는 그때, 가부라기 앞으로 의문의 이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데드맨’. 연속살인사건으로 죽은 남자가 보낸 이 제보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데……. 데드맨은 생동감 있는 묘사, 입체적인 캐릭터, 치밀하고 절묘한 플롯, 숨기고 드러내는 데에 능수능란한 긴장감 넘치는 구성과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번에 읽게 만드는 속도감으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그려낸다. 무엇보다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고전적인 대립 구도를 깨고, 섬뜩할 정도로 잔인하면서도 안타까울 정도로 처연한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시선을 동시에 던진다. 도쿄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숨 막힐 듯 몰아치는 두뇌 게임의 레이스, 치열한 수사 과정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유머와 위트,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해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는 집요한 작가적 태도는 『데드맨』이 흥미 본위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넘어서는 새로운 층위의 미스터리 소설임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
가와이 간지
출판
작가정신
출판일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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