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카즈아키 작가의 <13계단>, <제노사이드>로부터 11년만에 나온 신작 <건널목의 유령>. <13계단>은 법률 시스템을 헛점을 고발하며 사회파 스릴러 소설의 걸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제노사이드>는 전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스테일의 이야기를 펼치며, 페이지 터너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명작이고요. 국내에 발간된 작가의 모든 소설을 재밌게 읽은 저로서는 이번 신작 <건널목의 유령>은 쌍수 들고 환영한 책입니다.
주인공인 기자 마쓰다 노구치는 아내와 사별한 뒤 전국 일간지에서 여성지로 직장을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지의 취재환경과 문체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는 여름이 시작되자 심령현상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됩니다. 제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착각이었지만, 시모키타자와역에서의 제보는 취재를 할수록 진짜 유령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마쓰다는 이곳에서 1년 전에 인명사고가 발생했고, 희생자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었던 사실을 알아냅니다. 마쓰다와 동료들은 이 여성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면서 그 뒤에 감춰진 사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엄청난 이야기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350쪽의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단 이틀만에 모두 읽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 잊을 정도로 몰입감 있었죠. 문장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가독성도 높아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기 때문에 집중이 아주 잘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인의 정체와 그들이 왜 그 행동을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주요 관심사는 아닙니다.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독자를 찝찝하게 만든답니다. 악인을 처단하거나,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승리의 감정을 뿜어내는 시원한 결말은 아닙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악인은 결국 처단됐지만 그것은 마쓰다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에필로그에 들어가기 전의 마쓰다도, 독자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마쓰다와 동료들은 범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정체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화류계에서 일했던 사실로 인해 그녀의 권리와 존엄이 잊혀지는 상황에, 마쓰다는 이러한 불공평한 사회에 항거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이러한 시도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말부와 에필로그가 오히려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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