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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정체 불명의 피해자의 속마음을 밝히는 <건널목의 유령>

by 양손잡이™ 2023. 7. 24.

건널목의 유령 - 다카노 가즈아키(황금가지, 202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카노 카즈아키 작가의 <13계단>, <제노사이드>로부터 11년만에 나온 신작 <건널목의 유령>. <13계단>은 법률 시스템을 헛점을 고발하며 사회파 스릴러 소설의 걸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제노사이드>는 전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스테일의 이야기를 펼치며, 페이지 터너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명작이고요. 국내에 발간된 작가의 모든 소설을 재밌게 읽은 저로서는 이번 신작 <건널목의 유령>은 쌍수 들고 환영한 책입니다.
 
주인공인 기자 마쓰다 노구치는 아내와 사별한 뒤 전국 일간지에서 여성지로 직장을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지의 취재환경과 문체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는 여름이 시작되자 심령현상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됩니다. 제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착각이었지만, 시모키타자와역에서의 제보는 취재를 할수록 진짜 유령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마쓰다는 이곳에서 1년 전에 인명사고가 발생했고, 희생자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었던 사실을 알아냅니다. 마쓰다와 동료들은 이 여성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면서 그 뒤에 감춰진 사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엄청난 이야기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350쪽의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단 이틀만에 모두 읽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 잊을 정도로 몰입감 있었죠. 문장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가독성도 높아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기 때문에 집중이 아주 잘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인의 정체와 그들이 왜 그 행동을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주요 관심사는 아닙니다.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독자를 찝찝하게 만든답니다. 악인을 처단하거나,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승리의 감정을 뿜어내는 시원한 결말은 아닙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악인은 결국 처단됐지만 그것은 마쓰다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에필로그에 들어가기 전의 마쓰다도, 독자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마쓰다와 동료들은 범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정체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화류계에서 일했던 사실로 인해 그녀의 권리와 존엄이 잊혀지는 상황에, 마쓰다는 이러한 불공평한 사회에 항거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이러한 시도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말부와 에필로그가 오히려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건널목의 유령
란포상 수상작 『13계단』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야마다후타로상을 석권하고 각종 미스터리 랭킹 1위에 올랐던 『제노사이드』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다카노 가즈아키가 긴 공백을 깨고 11년 만에 장편소설 『건널목의 유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진짜 유령이 등장하는 본격 심령 서스펜스로. 올해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이 작품은 1994년 말의 도쿄를 배경으로 심령 특집 기획을 맡게 된 월간지 계약기자가 열차 건널목을 촬영한 사진에 찍힌 유령의 신원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촘촘한 필치로 그린다. 버블 붕괴 이후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공포심이나 위기감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치솟던 시대,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이 오로지 끈기와 인력에 의지해 발로 뛰어야 하는 기자의 취재 현장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과 매스컴 환경이 피부에 와닿도록 실감 나게 전달된다. 별다른 단서 하나 없을 것 같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하여 여성을 착취하는 유흥가와 조직 폭력단의 실상, 부패 정치인과 건설사의 유착 관계를 한 꺼풀씩 드러내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묘사에서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솜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오직 디테일의 힘과 이야기의 재미로 독자를 초자연적인 존재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도록 이끄는 『건널목의 유령』은 다카노 가즈아키만이 선보일 수 있는 심령소설의 결정판이다. 열차 정지 사고가 거듭되는 대도시의 건널목, 그곳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에 찍힌 유령의 정체는 한때는 전국 일간지 사회부 기자였던 마쓰다 노리오는 2년 전 가장 사랑하던 아내가 세상을 뜨자 상심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생활하다 현재는 계약직으로 여성 월간지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특유의 스타일을 요구하는 잡지 기사를 쓰는 일은 좀처럼 손에 익지 않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 역시 퇴색되지 않은 채 불시에 그를 덮치곤 한다. 계약 만료를 두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다친 동료를 대신해 심령 특집 기획을 맡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기삿거리를 검토하던 중 도쿄 시모키타자와역의 건널목 허공에 아스라이 찍힌 여성이 찍힌 투고 사진이 대두되는데, 카메라맨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기술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사진이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서서 목격자와 경찰을 하나하나 탐문하던 마쓰다는 1년 전 벌어진 살인사건에서 여성의 정체를 파악할 실마리를 얻는다. 2년간 간절하게 갈망했던 아내의 영혼과 마주할 일이 없었기에 유령의 존재를 불신하던 그였지만, 취재의 양상과 심야 1시 3분마다 걸려 오는 의문의 전화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치열한 취재 속에서 이루어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교감 왜 1994년인가? 작가는 디지털 기술로 개인이 쉽게 사진을 날조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려 윈도95가 등장하기 이전인 시대를 설정하여 완성도 높은 서사를 구축했다. 유령을 다루는 만큼 그 외의 부분에서는 최대한 현실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들인 공도 만만치 않다.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조사 방식은, 주인공이 신문기자를 하던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자료와 당시의 기자 활동을 아는 분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웹진 소설마루 인터뷰) 흔히 유령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강렬한 감정을 자극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지만, 『건널목의 유령』은 뛰어난 디테일로 마치 르포처럼 현실적인 시점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에 접근하며 독자 역시 점차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 가는 주인공에게 이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상세한 취재 못지않게 회의를 믿음으로 바꾸는 힘은 인물의 심리 묘사다. 『건널목의 유령』에 영감을 준 원천의 하나는 160명의 사망자 중 단 한 명의 신원이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는 ‘미카와시마 열차 사고’(1962)인데, 가족을 상실했기에 죽은 이에게 닿고 싶어 하는 인물의 감정과 신원미상의 희생자를 알고 싶다는 집념이 소설의 전개와 함께 점차 고조되며 섬세하게 어우러진다. 슬픔이나 공포를 자극하지 않고서 담담하게 죽은 자와 산 자가 맞닿는 애도의 과정이 여느 유령 이야기에서 느껴 볼 수 없었던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2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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