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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연대기의 장대한 마무리 - 황혼의 들판: 견인 도시 연대기 4부 (필립 리브)

by 양손잡이™ 2011. 10. 31.
황혼의 들판 - 10점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드디어 견인 도시 연대기의 마지막 권입니다. 전의 세 권을 내리 읽다 보니 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제 성격도 있고, 뒤로 갈수록 약간은 지루해진 이야기 진행도 있고 해서 3부를 읽고선 다른 책으로 잠시 눈을 돌렸습니다. 가벼운 문체로 쓰인 레벌루션 시리즈라든가 산뜻한 산문집, 가볍게 읽기 딱 좋은 연애서적, 모험은 없지만 재미있었던 SF 소설까지,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견인 도시 연대기는, 조금 잊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특정 날짜까지 다 읽어야 해, 라는 압박감도 사실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이 안 가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가진 책엔 욕심이 많이 나지 않더라고요.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 투성이인데다가 세네 권씩 빌려왔는데 막상 방에 들어와서 책장을 보면 읽을 책이 넘친다 이거죠. 분명 읽고 싶어서 산 책들인데 왜 이리 눈이 안 가는지. 이게 '이미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의 법칙인가 봅니다. 연애서를 봐서 이런 생각이 든 건, 절대 아닙니다. 암요, 아닙니다.

  시험도 많고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잠시 텍스트 불감증에 걸렸습니다. 덧붙여 영드를 본다고 시간을 더더욱 허비했지요. 전처럼 침대에 누워 느긋이 책을 보던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을 들기 며칠 전에 황석영 작가님의 북 콘서트에 참가했는데, 이야기를 잘 쓰려면 소설책을 읽는 비중을 줄이라고 하시더군요. 대신에 인문서 좀 읽으라고 당부하시던데요. 황작가 님 덕에 더더욱 손이 안 갔던 '황혼의 들판'이었습니다.

  헛소리만 해댔네요. 책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죠. 4권은 전권의 6개월 후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톰과 렌은 비행무역상 일을 하고, 헤스터와 슈라이크는 자신들만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테오는 고향 자그와로 돌아갔고 피쉬케익은 스토커 팽의 머리를 주워 자신의 스토커를 수리하면서 다닙니다. 그린 스톰에서는 스토커 팽의 빈자리를 나가 장군이 매꾸는데 닥터 위논이 그의 부인이 되어 견인 도시와의 화친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좋아하고 자기만이 옳은줄 아는 사람이 꼭 있길 마련이지요. 그린 스톰 내에서도 반 나가 세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평화 사절단으로 자그와에 방문한 위논이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고, 자꾸만 정신이 훼까닥해서 스토커와 안나 두 인격을 왔다 갔다 하는 스토커 펭은 3권에서 언급된 위성 무기 오딘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텍스트 불감증 덕에 글 자체를 보기 싫었지만 '황혼의 들판'을 편 날 200쪽을 훌쩍 보았습니다. 원체 집중력이 좋지 않아 한 시간 이상 가만히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날만큼은 두 시간 가량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뻔해 보이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전 권들과는 읽는 맛이 확연히 다르더군요. 여전히 필치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입니다. 연대기 내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캐릭터들이 나이를 먹어 전체적인 이야기가 깊어졌습니다. 물론 30대 어른의 말도 안 되는 순수한 생각을 보자니 내 복장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제목 그대로 이야기는 황혼이었습니다. 황혼이 무슨 뜻이당가, 네이버는 '사람의 생애나 나라의 운명 따위가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이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말하는군요. 소설 속에서도 톰이 말하지요. 렌을 위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톰과 헤스터는 언젠간 죽습니다. 아니, 그건 모든 인간의 숙명이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황혼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황혼 뒤에 밤이 있고 다시 해가 뜨지 않겠어요? 그렇기에 지는 태양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소설을 보면서 뭔가 배우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화려한 런던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신분계급차, 도시진화론의 당위성,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거나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이 시리즈, 견인 도시 연대기는 정말 잘 짜인 이야기였습니다. 4권 마지막에서는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미셸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연상시키는 마무리라니, 아아 정말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다만, 원서를 읽어 보고픈 마음이 잔뜩 생긴 건 비밀입니다.

  (2011년 10월 22일 ~ 2011년 10월 27일, 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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