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의(義)를 아는 한 남자 - 칼에 지다 (아사다 지로)

by 양손잡이™ 2011. 11. 8.
칼에 지다 - 상 - 8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북하우스

칼에 지다 - 하 - 10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북하우스


  오랜만에 읽는 역사소설이자 처음 읽는 아사다 지로의 소설입니다. <철도원>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왜 여태까지 읽어보지 못했나 싶네요. 아마 가까운 친구가 너무 극찬하는 작가여서 그런가 봅니다.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팔랑귀와는 반대로 행동하고는 하거든요. 그래서 베스트셀러도 잘 읽지 않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책을 읽고는 매번 후회하고는 하지요. 이 재밌는 걸 읽지 않았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이번 책읽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철도원>은 영화도, 원작 소설도 읽지 않았고 소설을 쓴 이도 몰랐습니다. 왜 그리 느낀지 모르겠지만 아사다 지로는 젊은 느낌이 났습니다. 그런데 웬걸, 검색해보니 흰머리 드문드문 나신 파파 할아버지시네요. 역시 오랜 작가의 책과 문장은 참 고색창연하구나란 걸 느꼈습니다.

  눈이 내리던 오사카의 난부 번 저택에 한 사무라이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며 힘겹게 들어갑니다. 하지만 때는 메이지유신, 게다가 그 사무라이는 저물어가는 막부를 섬기는 신센구미의 대원이었습니다. 그가 찾아간 난부는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저택 안으로 쉽사리 들이지 못하고 있었죠. 마침 저택의 총 책임자는 과거에 사무라이와 교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친분이고 자시고 부상당한 이에게 과거 탈번의 죄를 물으며 할복을 명합니다. 그리고 사무라이,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방에서 밤새 할복할 때를 기다립니다.

  이야기는 간이치로가 할복을 할 때까지를 그립니다. 단 몇 시간 동안 간이치로의 독백이지요. 하지만 그런 독백만으로 소설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홀수 장에는 간이치로(또는 다른 이)의 독백이, 짝수장에는 한 신문기자가 과거 그에 대해 알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며 간이치로에 대한 조사를 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간이치로뿐 아니라 그의 부모와 자식, 친구와 동료들에 대해서도 말하지요. 요컨대, 이 책은 하룻밤의 이야기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역시, 추천이지요. 하지만 전과 다르게 책이 재밌으니 한번 보라는 다른 분들이 추천하거나  서평 자체가 재밌어서 자의로 고른 책이 아닙니다. 전까지 아사다 지로에 대해 알지도 못했으니 이 작가의 책을 섭렵하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것도 아니고요. 활동하는 장르문학카페에서 자신을 울게 했던 글이란 게시글에 덧글로 달려 있던 한 문장을 본 것이 책을 본 이유입니다. 회원분의 지인은 평소 냉혈한이라고 평가받으시는데, 그분조차 눈물 콧물 쏟으며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눈물을 흘렸던 책이 평생 몇 권 안 되기 때문에 과연 이 놈도 나를 울릴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울었습니다. 네네. 감성이 조금 메마른 건 사실인지 눈물 콧물 쏙 빼진 못했으나 눈물을 흘린 건 사실입니다. 솔직히 이야기 자체는 엄청 감동적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간이치로의 독백과 그 다음 장에 나오는 글들이 서로 공명하여 제 감정을 푹 하고 건드리는 바람에 눈물이 왈칵 나오더라니깐요. 가끔 책 광고에 이런 문구가 나오지요. 단 한 줄의 충격 뭐시기! 하면서요. 그런 건 보통 과대광고일 가능성이 많은데 (작가님들과 출판업계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해) <칼에 지다>는 그런 광고문구를 때려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부끄럽게도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만 합니다. 책 읽기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이 슬픔과 감동이란 게 있죠, 급이란 게 있답니다. 느끼는 감정에 급을 따지는 게 어폐가 있어 보이지만 글쓴이들에게는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뿐 아니라 노래 등의 모든 예술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가수 이승철 씨가 말했듯이요.
 

1류란 자신은 감동하지 않고 관객을 감동시킨다.
2류는 자신과 관객이 모두 감동한다.
3류는 관객은 감동하지도 않았는데 자신만 감동한다.


  많은 분들이 대표적인 최루성 소설로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를 꼽으시곤 합니다. 한참 나라가 힘든 시기에 출간되기도 했고 나라꼴이고 뭐고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는 건 원체 힘들기 때문에 많이들 공감하고 우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또 심심한 사과를 드려야 할것 같은데, 전 이 소설, 정말 재미없게 봤습니다. 눈에 물기는 무슨 눈 비비다가 따가워서 눈물이 났을 뿐입니다. 진짜 작가이신 분에게 제가 이런 말씀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작가님 앞에서 무릎 꿇고. 할복이라도 해야 하나. 어쨌든, 그때 받은 느낌은 작가가 울어라 울어! 울라고! 이 대목은 울라고 쓴 거야! 였습니다. 가정과 사랑에 대해 썰을 푸시는 겁니다. 삶은 무엇이다, 인생은 어떻다, 난 마치 목사님 설교를 듣는 줄 알았다니까요! 주인공이 슬프다는 사실을 작가의 심한 감정이입 때문에 거북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동이 반감도 아니고 반에 반에 반에 반감 되었지요. 쯧, 어차피 다시 읽으면 눈물 콧물 다 짜면서 엉엉대겠지요? 내가 도대체 이 위대한 작가님께 이런 망발을 한 거야, 하면서. 이게 다 군대 때문입니다. 네, 맞아요, 군대에서 이 책을 읽었거든요.

  반면 <칼에 지다>는 인물들이 징징 짜지 않습니다. 절대. 엄청 잔잔하게 말하 거든요. 게다가 화자는 대부분이 무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젊은 시절 낭만보다는 피가 낭자하는 전쟁터에서 살아왔고 그만큼 성격도 우락부락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눈물 줄줄 짜는 이야기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그들이기에 이야기는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요. 간이치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조용히 어머니를 되뇌이는 그들의 이야기.

  저도 썰을 풀다보니 다른 책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군요. 게다가 내용도 더 많아. 항상 이렇답니다. 소설도 아니고 독서 감상문이나 일기를 쓰면서도 삼천포로 빠진다니까요.

  앞에서 한 문장, 한 문단으로 빵빵 터지는 글이라고 느꼈다고 썼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의 텐션이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야기 자체로도 재밌습니다. 절대 마지막 감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 뭉탱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 느낀 걸 어찌하겠습니까. 그래서 상, 하로 나눠지는 장편의 상권은 약간 재미없었습니다. 저, 사실, 꾹 참고 봤다고요. (오늘 여러분들께 많이 사과를 드리네요. 하지만 책이 모든 이들에게 재밌을 수는 없잖아요?) 제 점수는요, 5점 만점에 2.5점 드리겠습니다. 재미가 점층적으로 증가해서 하권 1/3 지점부터 5점으로 파바박 치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 읽고 전체적으로 돌아봐야, 아, 상권의 2.5점을 4.5점 정도로 상향조정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뭐든 이야기는 끝까지 봐야 한다니까요.

  감상문이 아니라 일기를 쓰는 느낌이 들고, 점점 오만한 의견이 많아지고 있고, 문제투성이입니다.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내일 수능 보는 고3 학생들 힘내세요. 이번엔 수능 날씨도 아니고 따땃하니 점심 먹고 괜히 졸지 마시고.     

  (상권 : 2011년 10월 31일 ~ 11월 4일, 462쪽 / 하권 : 2011년 11월 5일 ~ 11월 7일, 455쪽)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