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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트는 어떤가. 우리 책중독자들은 누군가에게 구애하는 걸 완전히 단념해버릴 수 있다. 그건 물론, 그러려면 성가시게 몸을 이끌고 나가서 데이트 상대와 실제로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식사, 영화, 콘서트일, 미술관, 미니골프, 그리고 온갖 종류의 다른 활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책중독자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어떤 일들은 돈이 들기도 한다.
  우리 책중독자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데이트란 이런 것이다. 두 사람이 무릎을 비추는 전등이 딸린 소파 두 개를 약간 떨어뜨려놓은 채로 앉아서 각자 다른 책을 읽는 것.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우리 책중독자들의 이런 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책방에서 데이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책이 아니라 우리 책중독자들의 행동이 대화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큐피드는 집중력을 잃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 책중독자들은 평소 우리가 책방에서 하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책을 산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가 책방에 같이 끌고간 어떤 데이트 상대라도, 우리 책중독자들로서는 지극히 정상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행동을 가지고 성가시게 굴 것이다. “저 책을 모두 읽을 건가요?” “집에 5천 권이나 잇는데 책을 더 살 건가요?” “어떻게 혼자 책값으로 10만원을 쓸 수 있죠? 그러면서 식당에 가서는 비용을 각자 부담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들이 나오게 될 것인데, 이건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어느 누구를 책방에 데려가더라도 우리를 이상히 여기고 질색하리라. 그러니 혼자 다니는 편이 낫다.

― 톰 라비,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0월 중순쯤이었나요, 취직을 위해 한 회사의 영어말하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당시 조금 맘에 들던 여자애와 함께 지원을 했었고 시험에서 제 다음 순번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종각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도 중고서점이라는 말에 너무 기쁘고 설렜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서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무심코 전화를 받았는데 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더군요.
딱 맞춰서 시작해야 하는데 빨리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5초 정도 빨리 말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얼굴팔렸다, 이러면서 한 15분 정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실 대화랄 것도 없었지요.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신세한탄을 했으니까요.
차도에서 차는 빵빵거리지, 거리의 사람들은 시끄럽지, 결정적으로 나는 서점 입구에 서있지, 지금 그 여자애와의 통화는 귀에 전연 들어오지 않더군요.
빨리 서점으로 들어가 서가를 뒤지고 책을 사고 싶어!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이다.
그래서 그냥 "그래, 짐에 조심히 들어가~"라고 (거의 일방적으로)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이나 쇼핑하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했죠.
참고로 이 이후로 우리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로 온전히 제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는 합니다.
난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싶다고!
정말 북카페에서 무릎을 맞대고 같이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헛된 희망을 토로해봅니다.
크리스마스가 딱 한 달 남았어.
으아아아.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 10점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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