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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아니었다면

  결점 많은 생도 노래의 길 위에선 바람의 흥얼거링메 유순하게 귀 기울이네 그 어떤 심오한 빗질의 비결로 노래는 치욕의 내력을 처녀의 댕기머리 풀 듯 그리도 단아하게 펼쳐놓는가 노래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강물은 무수한 물결을 제 몸에 가지각색의 문신처럼 새겼다 지우며 바다로 흘러가네 생의 완벽 또한 노래의 선율이 꿈의 기슭에 우연히 남긴 빗살무늬 같은 것 사람은 거기 마음의 결을 잇대어 노래의 장구한 연혁을 구구절절 이어가야 하네 그와 같이 한 시절의 고원을 한 곡족의 생으로 넘어가야 하네 그리하면 노래는 이녁의 마지막 어귀에서 어허 어어어 어리넘자 어허어 그대를 따뜻한 만가로 배웅해주리 이 기괴한 불의 나라에서 그 모든 욕망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새카만 재로 소멸하는 그날까지 불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노래뿐이라네 정말이지 그러했겠네 노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

_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200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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