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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속의 생시

  내가 이 해안에 있는 건
  파도에 잠을 깬 수억 모래알 중 어느 한 알갱이가 나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낫 듯 발자국은 보이지 않고
  점점 선명해지는 수평선의 아련한 일몰
  언젠가 여기 와봤던가 그 후로도 내게 생이 있었던가

  내가 이 산길을 더듬어 오르는 건
  흐드러진 저 유채꽃 어느 수줍은 처녀 같은 꽃술이 내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녀지를 밟는다
  꿈에서 추방된 자들의 행렬이 산 아래로 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한적한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다는 계속해서 태양을 삼킨다
  하루에도 밤은 두 번 올 수 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나는 생의 지층에 켜켜이 묻혔다 불려 나온다

_윤의섭,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30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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