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푸른숲 |
007.
오 마이 갓. 저는 분명 어제 새벽에 <더블 side B>를 덮고 자려고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시간을 조금 때울까 하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찜해둔 위화의 <인생>을 잠깐 폈습니다. 정말, 한 50쪽만 읽고 자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에잇, 5시 조금 넘어서 편 책을 날이 밝을 때까지 들고 있을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겨울이라 해도 늦게 뜨잖아요.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어제 아침에 시계를 확인했을 때 바늘은 8시 30분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무려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시느라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때였죠. 엄청났습니다.
위화 작가는 작년에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참 늦은 만남이지요. 그때 읽었던 작품은 <허삼관 매혈기>였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한 가족을 통해 그대로 투영하고 그에 따른 가난과 고통을 슬프게, 하지만 너무 슬프지만은 않게 해학적으로 그려냈었죠. 허삼관과 아빠의 모습이 겹쳐 엄청 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떤 나라든 근현대사는 참 재밌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기계가 들어오는 시기잖아요. 과거와 미래가 서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시기. 그렇기에 사는데 굴곡이 참 많고 정말로 드라마틱한 광경이 많이 벌어집니다. 위화는 소설에 중국의 근현대사를 절묘하게 녹여냈습니다.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다룬 책입니다. 부농이었던 푸구이의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고 어떻게 중국의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견뎌냈는지 써내려갑니다. 주인공 '나'가 노인 푸구이에게 말을 든는 형식으로 돼 있어서 서술은 모두 대화체입니다. 대화체인 건 정말 큰 장점입니다.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독자가 푸구이 앞에서 직접 얘기를 듣는 듯하게 문장도 준수합니다.
집중도는 높았으나 <허삼관 매혈기>와 약간 비슷한 방식의 전개여서 아쉬웠습니다. 물론 다루는 감정은 조금 다르지만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또 이렇게 되는 거야? 푸구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정말로요. 푸구이의 인생, 참 더럽게도 꼬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 따위는 그딴 거 두렵지 않은 법이라고, 푸구이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말합니다. 그럼요 그럼, 인생사 새옹지마잖아요. 그런데 푸구이의 삶은… 아이고, 눈물납니다.
너무나 낙관적인 것이 책의 아쉬웠던 점이라고들 하는데 오히려 저는 정 반대입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점, 이런 낙관적인 마음으로 살기에 푸구이가 그 고난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만의 의식이 아닐까요.
아쉽게도 <허삼관 매혈기>보다는 찡한 게 덜한 작품이었습니다. 읽히기는 잘 읽히나 공감가는 면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위화의 작품을 읽다 보니 중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해 보고 싶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중국 근현대사에 관련된 책과, 그 역사 안에서 빛나는 루쉰의 책을 읽으렵니다.
(2012년 1월 16일, 304쪽)
반응형
'독서 이야기 > 독서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슬 드러나는 실체 - 그것 중 (스티븐 킹) (0) | 2012.01.25 |
---|---|
잊고 있었던 악몽 - 그것 상 (스티븐 킹) (0) | 2012.01.21 |
역시 박민규 작가야! - 더블 side B (박민규) (2) | 2012.01.16 |
이게 어린왕자라고?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A. G. 로엠메르스) (0) | 2012.01.15 |
디테일을 잡아라 -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2: 묘사와 배경 (론 로젤) (0) | 2012.0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