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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이게 어린왕자라고?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A. G. 로엠메르스)

by 양손잡이™ 2012. 1. 15.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 7점
A.G 로엠메르스 지음, 김경집 옮김/지식의숲(넥서스)


005.

  <어린왕자>의 두 번째 이야기라는 이 책을, 참 우연찮게 구했습니다. 작년 후반기에 <어린왕자>를 다
시 읽고 느끼는 게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꼭 읽고 싶었는데 소원대로 됐군요. 이 책은 생텍쥐페리가 쓴 정식 후속작은 아닙니다. 다른 작가가 썼고 생텍쥐페리 재단에서 극찬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셜록 홈즈 후속작 <실크 하우스의 비밀>처럼 말예요.

  저는 <어린왕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읽는 모두가 감동을 받는 작품이지요. 그리고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책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때 읽은 후로 대략 15년 만에 다시 읽었는데요, 비룡소에서 출간된 얇은 어린이용 책이었지만 여전히 생각할 거리는 많이 던져주더라고요. 군중 속의 고독의 해석이 참 맘에 들었어요. 전작이라는 <어린왕자>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번째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을 참 기대했습니다.

  극찬은 이미 많은 분들이 하셨을 테니 전 불평불만 가득한 쓴 소리 좀 해보겠습니다.

  단언하건데 이건 어린왕자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라고요? 아뇨, '또 다른 이야기'라고 해야 옳아요. 단지 어린 왕자라는 캐릭터와 <어린왕자>에서의 화자, 그리고 어린 왕자가 지구까지 오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차용했을 뿐입니다.

  베르나르의 <나무>를 정말 재밌게 봐서 후속작이라고 나온 <나무 2>도 기쁜 마음으로 샀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죠. 제목과 상상력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독자가' 쓴 책이었죠. 하지만 적어도 소설이라는 장르는 유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야기'라면 원작과 같은 장르여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게 어딜 봐서 <어린왕자>와 비슷한 이야기란 말입니까? 이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젠장, 이걸 감안했어야 했는데. 소설은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숨기지만 이 책은 메시지를 위해 이야기인 척하는 거죠. 시점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모든 서술이 너무나 정직하고 직관적입니다. 심지어 군더더기 가득한 문장들도 수두룩하죠.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제목을 잘못 지었다는 말입니다. 거의 사기 수준의 마케팅입니다. 과연 생텍쥐페리 재단에서 극찬한 책이 맞나요? 전 띠지나 뒷표지의 홍보문구를 절대 믿지 않습니다. 물론 직관적인 메시지가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두 번째 이야기라는 제목을 걸고 출판됐다면 원작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아름다움은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후후후 심호흡 세 번 합니다. 줄기차게 말한 원작의 그늘을 빼면 책은 상당히 좋습니다. 마음의 치유가 가능한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숨겨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하는 방법도 좋지만 직관적인 이야기일수록 효과가 배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와 닿지 않았습니다. 특정 신앙이나 철학에 의존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러기에 너무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글쎄요, 제가 '어린왕자'라는 타이틀에 너무 기대를 했기에 화가 나서 책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절박함이 없어서? 삶의 쓴 맛을 못 봐서? 하긴 자기계발서나 잠언집을 볼 때마다 드는 느낌이 다르다고 하지요. 이 책도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참, 책을 읽으며 하나 확실히 깨달은 게 있습니다. 여기서 화자 '나'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답을 하며 오히려 삶의 답을 얻습니다. 어린 왕자에게 이러면 안 돼, 저렇게 살아야 해 말하면서 정작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죠. 뭐든 자신을 솔직히 표현해야만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 수 있다는 것. 알아두고 갑시다.

  (2012년 1월 13일 ~ 1월 14일,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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