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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11년 6월 7일 화요일 잡담 - 청춘표류기 I

by 양손잡이™ 2011. 6. 8.
청춘표류기 I



  두근두근.
  마우스를 잡은 손이 자꾸 미끄러진다. 손을 옷에 계속 훔치지만 한번 흐른 땀은 댐을 무너뜨린 홍수 마냥 자꾸 흐른다.
  드디어 고대하던 삼성전자 인턴 면접결과 발표 날이다. 메모리에 관심 있던 나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꽤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황의 법칙도 깨지는 요즘, 인텔의 3D 반도체 기술 발표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직접적인 반도체회로 개발은 하지 못하지만 회로를 가지고 직접 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나는, 점점 작아지는 반도체에 더 세밀한 식각의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연구·개발직에 지원을 하였다.
  물론 면접에서 질문의 의도에 맞지 않은 답변을 많이 했지만 자신감과 뚜렷한 포부는 보였다. 승산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무리, 무리. 면접을 같이 본 친구들에게 쏟아졌던 질문에 비하면 내가 받은 질문은 너무 부족했다. 도대체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면접관들. 면접장에서 나오자 다들 물었었다. 왜 이렇게 빨리 나왔냐더라. 질문 더 있으세요? 저는 없습니다. 저도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거기다 꾸벅 인사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지만 영 믿음이 가지 않는, 겉치레일 뿐인 인사이다. 제길.
  5시. 발표 시간.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다른 곳도 그렇지만 특히 삼성전자는 인턴에서 공채로의 전환율이 상당히 높았다. 작년 동계 인턴쉽에서 전환율이 99%였다던가. 그 1%도 자기가 안한다고 했던 거란다. 그래서, 이리도 인턴에 목을 매는 것이다.
  같이 면접장에 있던 친구들 모두 컴퓨터 앞에 차분히 앉아있다. 아마 1분 뒤면 어떤 분위기일까. 합격한 사람들은 불합격 인원에게 미안해서 당장은 좋다고 소리치지 못하겠지. 하지만 컴퓨터실을 나가자마자 환호를 지를 게 분명하다. 불합격 인원들은… 잠시 고개를 떨구고 어제 약속했던 술자리나 알아보러 갈 테지. 기말고사 공부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할 거다. 한쪽은 흥분에, 한쪽은 좌절감에….
  우리 중 가장 학점이 높은 친구가 합격여부를 확인하였다. 평소 발표도 많이 하고 긴장도 많이 안하던 녀석이라 합격 가능성은 가장 높아보였다. 이번에는 자신감이 없었다는 둥 엄살을 피웠지만 저놈 아니면 누가 합격하겠어, 라는 맘을 다들 가지고 있었을 거다.
  제길.
  친구는 눈을 감고 목을 젖힌다. 제길 이라니, 제길 이라니! 얼른 그의 모니터를 확인한다. 죄송합니다. 아쉽습니다.
  아쉽긴 뭐가 아쉬워.
  제일 합격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불합격하자 컴퓨터실은 끈적한 공기가 맴돈다. 다들 조용하고, 에어컨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웅웅거린다.
  친구 녀석은 침울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상하게도 가진 실력에 비해 모든 걸 보여주지 못하는 친구였다. 이제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 들겠지. 나만 탈락하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축축한 마우스를 다시 잡았다. 에어컨 바람 덕에 차갑다. 나도 곧 가슴에 이런 차가운 느낌을 받으려나―. 마우스 커서는 심하게 떨리며 면접 전형 확인 버튼을 누른다.
  사용자가 많아 잠시 버벅인다. 옛날 프린트라도 되듯 페이지는 맨 위부터 찬찬히 뿌려진다.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내려온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
  합격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혹시 잘못 본 건가? 남의 결과를 보았나? 두리번거리니 다들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나도 벙찐 표정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엔터. 면접전형 확인 클릭.
  다시 봐도 합격이다.
  예에쓰―!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온다. 불합격자가 있지만 그것까지 배려할 정도로 사려 깊은 사람은 아니다. 이로써 대학생활의 마지막인 취업 길로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것도 오직 나만의 능력으로 말이다!
  눈물일까. 주변이 뿌예진다. 모두들 흔들리고, ‘합격’ 두 글자가 일렁인다. 승리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처음으로 거둔 승리. 주변으로 멋진 승리의 팡파르가 울린다. 멋있어. 오늘은 이 음악에 취해도 돼. 나 자신을 위로한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더욱 커진다.



  눈을 떠보니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망상이 괜히 헛된 희망만 부풀렸다. 그래도 하루 종일 기분은 업 돼서 좋긴 하더라.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아 ㅅㅂ 꿈"

 


  - 독서 기록


  행복의 함정, 리처드 레이어드.

  다시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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