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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8점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여름언덕



071.

  모욕게임이란 것이 있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은 읽지 않았으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책을 한 권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그 책을 읽었다고 할 때마다 1점을 얻는다. 한 사람은 <황야의 늑대>로, 다른 하나는 로 5점 중 4점을 얻어 공동우승했다. 하지만 <올리버 트위스트>는 아무도 읽지 않아 0점이었다. 이쯤되면 왜 모욕게임인지 알 것이다. 사회적 통념에서 흔히들 양서, 필독서라 칭하는 것들을 읽지 않은데서 오는 모욕, 동시에 가장 점수가 높다는 데서 오는 상대적 모욕. 점수가 높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기초 교양이 떨어진다는 말 아닌가! 모욕감과 승리감이라는 모순적 감정이 결합하여 더욱 비참함을 느낀다.

  곧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해서 게임에서 이기려 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저 시는 데서 오는 패배감과 교양 부족에서 오는 부끄러움, 어떤 게 더 클까? 모두들 전자를 택할 것이다. 교양을 중시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아직 <햄릿>도 읽어 보지 않았다오'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에는 '필독서'가 넘친다. 대학에서 뽑은 필독서 100선도 있겠고 20세기 위대한 작품도 있겠고 어느 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책도 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남들이 권하는 책보다 훨씬 많은 책이 존재한다. 도서관에 장서만 10만여 권이지만 이 정도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세상에 책은 많고 나란 존재는 하나 뿐이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어도 작은 도서관의 책조차 평생가도 볼 수 없다.

  모든 책을 읽고 싶다는 건 자신을 채우고퍼 한다는 한 가지 욕망이다. 세상의 모든 것,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꾸준히 공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지식을 섭렵할 수 없다. 한계를 알면서도 우리는 좌절한다. 내 한계는 여기인가, 능력이 이것뿐이 안 되는가. 자책하고 실망한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세에서 우리는 '의무감'을 만들어낸다.

  세상에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면 책을 읽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놈의 의무감 때문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해. 읽고나서 싹 정리해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후딱 읽고 치워버리거나 대충 훑어보는 책 읽기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죄짓는다고 착각하는 버릇이 있다. 저자에 대한 의무, 종이에 대한 의무, 책에 대한 의무. 책을 읽은 후 망학하는 게 두려워 끝없이 되뇌이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망각에서 오는 책의 이미지화를 무서워한다. 자신은 뭐든 완벽히 '알아야' 하므로.

  책 읽지 않은 사회가 되어가기에 사회는 우리에게 책을 더욱 강요한다. 사회가 신성시하는 작품이 분명 존재하고 이것을 읽지 않았을 경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모욕게임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올리버 트위스트>는 현대 미국의 위대한 작품이지만 점수는 0점이다. 아무도 읽지 않았다. 게임에 참여한 이들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외친 사람에게 굴욕감을 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욕했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한 것이다. 실상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괜히 남 시선을 신경쓰고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변명과 거짓말이라는 방어기제로 자신을 더욱 감싼다. 부끄러움을 한껏 덧칠하고 말이다. 우리는 떳떳할 필요가 있다. 그럴수도 있지, 안 그래?

  과연 진정한 책읽기란 무엇일까. 모든 책을 읽는 것은 지식에 대한 경배일까 단순한 시간낭비일까.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잊었다면 난 책을 읽은 걸까 아닌 걸까. 나는 어떤 생각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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