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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박웅현, 강창래

by 양손잡이™ 2012. 11. 4.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7점
강창래 외 지음/알마

 

 

096.


  선택의 고민은 끝났어. 흑백의 화면에 진한 주름을 가진 세 남녀, 황정민, 신하균, 전지현이 말한다. 기존 광고에서 볼 수 없는 흑백화면에, 인물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광고를 이끌어간다. 여태까지 봐왔던 광고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차 옆을 지나가는 인라인 스케이터가 나오는 광고를 본 적 있는가.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란 카피를 들고 나온 KTF의 광고이다. 시장에서 시각 장애인이 핸드폰 문자를 통해 물건을 달라 하고 주인 할머니는 따뜻한 문구로 답장하는 광고는? 만들었던 광고마다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박웅현의 작품이다.


  박웅현은 제일기획에서 광고일을 시작하였다. 대학교 시절, 광고 관련 상을 받은 뒤 이것이 자신의 천직인가 싶었지만 회사 생활 3년 간은 회사에서 지진아였다고 한다. 잘 해야만 하는 프레젠테이션도, 남들 앞에 서기가 무서워 그렇게나 피해왔다. 박웅현은 많은 연습으로 완벽하게 발표했고 4년만에 주어진 단 한번의 기회를 대차게 잡았다. 그 뒤부터는 남들도 자신을 지진아로 보지 않았고, 자신감도 생겨 일도 더 잘됐다. 그는 IQ가 높지 않다. 시험은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다만 광고라는 틀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천재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통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은 오히려 천재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들은 굳은 인내심으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그 경지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단지 '머리가 좋으니까'라는 이유로 노력을 폄훼하곤 한다. 만 번의 실패를 거듭한 에디슨에게 단지 당신은 발명왕이기에 모든 걸 뚝딱하고 만들어낼 수 있던 것 아니냐고 한다면, 에디슨은 벌떡 일어나 세상의 모든 전구를 깨버릴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박웅현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가 만들었던 광고가 어떤 아이디어에서 나왔고 어떻게 가지를 쳤으며 왜 만드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창의성에 대한 박웅현과 강창래의 생각과 의견, 생각을 어떻게 만들고 완성시키는가에 대해 다른 책을 인용한다. 사실 <책은 도끼다>를 살짝 들춰본 뒤 이 책을 폈기에 기대가 많았다. <책은 도끼다>는 실제로 그가 읽었던 책을 말하며 머리가 깨이는 듯한 경험을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알마 출판사에서 편 책은 대부분 이 시대의 뛰어난 인물 몇을 골라 그 인물의 삶과 일, 생각을 담는다. 다른 책에선 공지영, 박원순, 이어령을 다뤘다. 아쉽게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제목만 인문학이 들어간달 뿐이지 인문학이 그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나와있지 않다.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었다, 고만 돼있는 부분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인문학이라고 다들 어려운 철학이나 역사를 떠올리곤 하는데, 사실 인문학이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역사, 미술, 음악, 심리학, 이 모든 게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기에 광고인 박웅현에게 '이런 의미'의 인문학은 매우 중요하다. 광고는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한국에서 뛰어나다고 안정받은 박웅현이지만 외국의 많은 광고상 중에 겨우 세 개밖에 타지 못했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서구권 문학은 소재를 얼마나 다르고 펑키하게 다루는지에 주안점을 주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 수험생에게 수고했다는 카피를 남긴 광고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버스에서 졸다 기상나팔소라의 핸드폰 벨소리에 깜짝 놀라는 군인은 우리나라 군대를 모른다면 그저 우스울 뿐이다. 박웅현은 한 나라에 '먹히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하고, 사람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직관을 갖고 사소한 것에서 위대한 것, 나만의 것에서 우리의 것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기대치가 높았기에 아쉬운 점도 많은 책이다. 3부 '창의성의 비밀'의 경우 박웅현의 광고와 기존의 창의력 이론을 융합시켜 접근도와 몰입성을 높였지만 그만큼 깊이가 얕아졌다. 이 책에서 인용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그중 <생각의 탄생>을 많이 따왔다. 창의적 사고는 공부만으로 키워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인문학으로 광고하다>가 그 길로 가는 첫 교두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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