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킹의 후예 - 이영훈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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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암환자 채연과 보험회사 직원 영호의 사랑 이야기로 문을 연다. 채연의 아들 샘이 미국에서 돌아오지만 새아빠 격인 영호와는 말도 섞지 않는다. 샘이 밤 중에 몰래 티비를 보는 걸 발견한 영호는 그게 무슨 프로그램인지 궁금하다. 특촬물 '변신왕 체인지킹'이다. 변신이란 의미가 중복되는 특이한 제목을 가진 특촬물. 특촬물 매니아 사이에서도 평이 안 좋은 이 방영물을, 샘은 왜 몇번이고 돌려봤을까. 이런 샘과 영호의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영호와 안의 보험회사 이야기이다. 과거에 보험금을 노리고 두 아들에게 악행을 벌였던 아버지, 그 아들의 딸이 팔이 부러지고만다. 과거에 있던 일 때문에 보험금 심사에서 반려된 사건을 영호와 안은 끈덕지게 조사한다.
왜 샘은 망한 특촬물을 좋아할까. 영호는 정보가 많지 않은 이 특촬물을 조사하는데, 특촬물 매니아인 민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특촬물은 제목과 주인공, 괴물 생김새 모두 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일한 이야기의 변주일뿐이다. 이런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변신왕 체인지킹'은 매우 괴상해 보인다. 이 특촬물은 외계 생명체에 감염돼 자신의 혹성을 파괴시키려는 왕과, 그 아들이자 혹성의 왕자 체인지킹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혹성을 파괴하려는 왕, 외계 생명체에 의해 아직 죽지 않은 혹성인을 죽이고 슬퍼하는 왕자, 특촬물의 주연령층인 아이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결말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샘의 특이한 취향에 대해 영호와 민(어른)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뀐다. 안과의 에피소드에서는 진짜 아버지가 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토로한다. -아쉽게도 이 부분은 크게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보편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이다. 그것은 이전 세대에게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자신의 결정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로만 사는 인생의 슬픔이다. 특촬물처럼, 아무런 자각 없이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자가복제하여 끝없이 변주한다. 꿈조차도 오롯이 혼자 꾸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렇게 했으니까, TV에서 예쁘게 보여줬으니까 그저 따라할 뿐이다. 그러는 새에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잃었다.
아버지, 또는 뭔가 배울 사람이 없어 사회와 세대 간의 단절을 끄집어내는 발상은 창의적이다. 다소 생소한 소재들을 절묘하게 매치시켰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 이전의 에너지를 잃은 이야기가 아쉽고, 전체적 플롯이 약간 투박하다. 뒤로 갈수록 보험회사 직원과 암환자의 사랑, 샘이 '변신왕 체인지킹'을 좋아하는 이유 등 다른 소설에서 찾기 힘든 소재는 다소 빛을 잃는다.
싱겁지만 그 싱겁고 간단한 문제가 우리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을 만들어내는지, 간단한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는지 곱씹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나'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그저 남이 만들어낸 내러티브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함도 짙게 뭍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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