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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인간은 자신이 규정한 모습을 믿는 동물이다 -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by 양손잡이™ 2013. 4. 4.
철학자와 늑대 - 10점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추수밭(청림출판)



031.


  늑대. 동물이 나오면 흔히들 쉬운 내용을 담은 책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영화 '파이 이야기'에는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등장한다. 단지 '호랑이'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대동한 부모들이 영화관에 꽤 몰렸고, 아이들은 인간과 신앙에 대한 주제를 가진 '파이 이야기'에 금세 질려 앞 좌석을 발로 뻥뻥 차는 바람에 앞 좌석에 앉은 어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개탄했다는 에피소드가 들려오기도 했다. 웬 횡설수설인가 하겠지만, 사실 이 책을 든 이유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의 정원>,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읽다보니 잠시 쉬운 책을 들 필요를 느꼈다. 이 책이 쉽게 다가온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늑대, 즉 동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늑대 같아 보이지 않는 뚱한 실루엣과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 그려진 표지가 참 귀엽다. 부제(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마저 단순한 에세이나 논픽션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저자가 마크 롤랜즈라는 게 가장 흠이었다. 나는 장르문학을 사랑해 마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마크 롤렌즈의 전작 <SF 철학>은 제목부터 딱 꽂히는 책이었다. 소재가 SF인데다가, 무엇보다도 두께가 얇아 부담없이 그 자리에서 책을 폈다. 그리고 50쪽도 못 읽고 다시 서가에 꽂아두었다. 그저 즐기는 소재로만 생각했던 SF를, 저자 마크 롤랜즈는 참… 꼬기도 많이 꼬았다. 평소에 '정말 재밌게 읽었던 철학자'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철학자와 늑대>를 읽은 후로는 진실이 되었다. 다만, '재밌지만 어렵게'라고 고치고 싶다.


  이 책은 또한 생물학적 독립체로서가 아니라, 그 어떤 존재와도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을 고찰하고 있다. (14쪽)


  단순히 철학자와 늑대가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었다면 호평은 커녕 책 출간도 어려웠을 테다. 사실 '동거 일기'라고는 되어 있지만 브레닌에 대한 이야기가 반밖에 되지 않는다. 실상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1장의 두번째 쪽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단순히 사람과 늑대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가 아닌, 늑대를 아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놓인 개체라 생각하고 그에 우리 인간을 비춰보고 사색하는 내용이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 브레닌이 몰래 음식을 먹은 후 주인에게 딱 걸렸다. 동물은 몸으로 말을 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자기도 어쩔줄 몰라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해도 거짓말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음식을 먹은 게 늑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당황하기는 커녕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영장류는 늑대에 비해 뇌의 크기가 20%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영장류가 늑대보다 지능이 더 높고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월'의 기준은 특정한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영장류는 지능이 발달했기 때문에 집단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 정반대로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 지능이 발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남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료를 이용하여 적은 비용으로 집단 생활의 혜택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에 앞서 우월의 증거로 내세운 거짓말은 사회 체제에서 유리하게 살기 위한 위한 덕목 중 하나가 된다. 곧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이고, 우리가 늑대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근거가 바로 이 '속임수와 계략'이 되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이 끝없이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재밌는 견해도 내놓는다. 매일 산책이 끝난 후 빵집에 들러 똑같은 빵을 산다. 사람이라면 또 이 빵이냐며 불평을 하겠지만 브레닌은 매일 혀를 내밀고 빵이 얼른 자신의 입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시간이란, 늑대는 원의 형태로 인식하지만 인간은 직선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있단다. 시간이 지나 삶의 끝에는 결국 '죽음'이란 무서운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정된 삶에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인간은 끝없이 목표와 욕망을 만들어낸다. 직선의 시간이 주는 두려움을 피하고자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곧바로 다른 목표를 만들어낸다. 결국 인생은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이다. 삶은 목표와 목표가 연결된 단순한 선이고 인간의 시간은 그저 앞으로만 가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지금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인간에게 매 순간은 끝없이 유예되며 진정한 순간이란 없다. 한없이 투명한 순간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들의 메아리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를 비출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감정은 단 한 순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인간에게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은,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고 희망도 없을 때라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삶의 목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최고의 순간은 강렬한 쾌감과 환희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최고의 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일 수도 있다. 시간이 아닌 순간의 존재에게는 최고의 순간이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이며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끔찍하고 불쾌한 순간을 감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줄곧 착각한다. 우리는 논리를 토대로 행동하고 스스로 선악을 구별할 줄 안다. 이성과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자유의지를 앞세워 행동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이런 근거로 우리가 지구 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동물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사실 동물이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일 중에서 실은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우리는 말을 할줄 알고 노래를 부를줄 알며 사랑할줄 안다. 동시에 거짓말과 계략에 능숙하고 남을 속일줄도, 시기할줄도 안다. 인간은 단지 특정한 측면에서 우월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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