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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구질구질한 인생 -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by 양손잡이™ 2011. 5. 10.

이책이당신의인생을구할것이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A. M. 홈스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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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 동안 지긋지긋하게 잡고 있었던 책이다. 18일에 읽기 시작해서 오늘 새벽에서야 겨우 다 읽었다. 스티븐 킹이 추천한 10권의 책 중 하나여서 장르소설을 기대했던 내 잘못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다 읽었다.
  작가의 고유 문체인지, 아니면 이 소설의 설정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가 느끼기엔 서술이 엉망이다. 앞 뒤 다 잘라내고, 아주 간결하다. 그래서 읽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 재밌는 것은, 이런 난해함 속에서도 소설 속 장면이 내 머릿속에 깨끗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제목부터 참 거창한 책이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참고하여 통증을 줄이는 책은 아니고, 어디 무인도에 갇혔을 때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건 살면서 순전히 내 고통만을 비추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사는 것 자체를 말하고 있다.
  책의 주인공은 리처드 노박으로, 주식 관련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손에 거머쥐었다. 큰 집을 가지고 있고, 그곳은 가정부가 항상 깨끗히 정돈하며,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 건강식을 먹고 꾸준한 운동을 하고,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헤어져 있는 부인과 아들만 빼면 말이다. 순탄한 삶을 사는 그에게, 어느날 통증이 찾아온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어디가 아픈지 모르는 통증이다. 그리고 이 통증으로부터 그는 자신이 여태껏 살던 인생과 다르게 살아가기 시작한다.
  집 주면에 나타난 흙구덩이, 자신을 엄습하는 이유 모를 통증, 병원에서 만난 믿음이 가지 않는 의사, 평소라면 먹지도 않는 도넛을 먹기 위해 들어간 가게에서 만난 앤힐, 집 주변에 사는지도 몰랐던 유명 영화 배우, 수산물 센터에서 만난, 가족들이 자신의 중요성을 모른다는 한 여인, LA에서 여행을 오는 아들 벤 등등...리처드는 통증을 느낀 후로 자신의 인생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이 책은 리처드와 주변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뭘 먹기는 하는 겁니까?" 그는 바싹 마른 야간 직원에게 물었다.
  "건전지요. AAA 건전지로 움직이죠."
  그는 그 말을 믿었다. (p.40)


  사실 인생은 참 여러 의미로 구질구질하다. 누구는 힘들게 야간 직원으로 일하고, 누구는 가족을 위해 죽어라 일을 하지만 인정받지 못한다. 누구는 남들의 이목을 받지 않기 위해 숨어 산다. 누구는 게이이고, 누구는 "이이"소리밖에 내지 못하며 병원에 누워있다. 그리고 누구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그보다 상쇄력이라고 해야지. 모든 게 균형에 달렸어. 균형을 맞추려면 상쇄력이 필요해." (p.278)


  주변을 돌보지 않고 오직 성공과 자신만을 바라보며 달린 리처드이다. 그는 투자와 거래를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매순간 성공을 이뤘을 것이다. 부족한 게 없다. 그의 주위에는 없는 것이 없다. 돈이 있고, 집이 있고, 맘만 먹으면 여자도 집으로 들여올 수 있을테다. 헤어진 아들을 보러 가는 것도, 사실 겉으로는 미안하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건강을 위해 비타민 제를 맞으면서도 술과 대마초를 피는 닉이 말한다. 필요한 건 균형이라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모자랄 것이 없는 리처드이지만, 사실 닉이 말한 그 균형은 진즉에 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통증이 오자 이게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심장마비인 듯하다)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 리처드에게서 언뜻 볼 수 있다. 망가짐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의 무의식에 조용히 똬리를 틀고 앉아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내가 죽으면 과연 남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아직 리처드에 비해서 많이 어리지만, 나도 그 순간에는 균형이 깨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균형이 깨지면, 사람들은 대게 운다.


  리처드는 다가가서 벤을 앉으려 하고, 벤은 손을 내민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 (pp,337-338)

  그리고 세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엄천난 간극이 있다 해도 지금 그들은 함께 있고, 어느 정도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것이 원하는 만큼의 충족감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충분하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p.491)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오랜만에 만난 리처드와 벤의 어색한 의사소통 사이에서 느껴지는 공감의 간극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집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저녁을 먹는 것, 쌀쌀한 날씨에도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것, 시간을 쪼개가며 나를 위해 책을 읽는 것, 모두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삶의 불안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벤이 기겁해서 묻는다.
"아빠, 아직 거기 있어요?"
"그래, 여기 있다."
"이젠 안 보여요."
"여기 있다. 난 언제나 여기 있을거야. 네가 날 보지 못할 때에도 여기 있어." (p.511)


  나는 내 앞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사는데 있어서 느끼는 불만이나 불안, 내 불투명한 미래 또한 알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들이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할 때에도 그것들은, 그들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습지만, 이 모두가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참 괴상한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응당 다음에 와야 할 것 같은 스토리가 전혀 떠오르지 않고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예측 불가이다. 작중 인물 모두 아주아주아-주 개성이 넘치고 제멋대로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게 우리의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열길 물속보다 알기 힘든 게 한길 사람속이다. 나도, 이렇게 재미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을 되뇌며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 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글을 다 쓰고 나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겉멋만 잔뜩 든 느낌이다. 제길.


(2011년 2월 18일 ~ 2011년 2월 21일, 5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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