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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의 해
앤디 밀러 지음, 신소희 옮김/책세상



2015-046.


0. 여러번 생각하지만, 책세상 출판사의 메타북(첵에 관한 책) 표지 디자인은 복고풍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촌스럽다. 이는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표지평과도 정확히 일치하는데,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가 멋진 디자인인 것과 완전 반대이다.


1. 촌스런 표지에 촌스런 폰트의 표지지만 부제가 걸작이다.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 물론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만큼 인상적이진 않지만 걸작 50권과 영 아니었던 2권의 대비가 강렬하다. 걸작이야 남들이 손꼽는 책을 골랐을턴데, 과연 그저 그런 2권의 책은 무엇일까. 제목에는 왜 위험하다는 단어가 들어갔을까? 표지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2. 저자 앤디 밀러는 작가이자 출판 편집자이다. 젊었을 적엔 책과 글을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 일에 치여 살 수록 책에서 멀어져간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아내와 아이에게 시간을 쏟는다. 읽는 거라곤 이메일뿐이고 지하철에선 스도쿠에 머리를 싸맨다.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3. 그는 아들과 산책을 하던 중 비가 와서 잠시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집어든다. 오랜만에 어려운 독서를 해서일까, 난해한 스토리와 수많은 상징으로 가득찬 이 책을 쉽게 읽지 못했다. 동시에 읽기에 대한 열망을 다시 불태운다. 닷새만에 읽은 이 책이 그의 시간을 조금씩 뒤바꿨다.


4. 저자는 아내와 함께 책 목록을 작성한다. 지금까지 읽지 않았다는 게 정말 창피하게 느껴지는 책들을 쭉 적는다. 목록에는 <공산당 선언>이 있고, <모비 딕>도 있으며 <오만과 편견>도 있다. 악평(!!!)이 자자한 <소립자>, <전쟁과 평화>, 다른 책들과 다른 부류의 <실버 서퍼 에센셜>(마블의 그래픽노블)도 있다. 그리고 하루에 50쪽씩이라도 읽어 책을 꼭 끝내기 위해 노력한다.


5. <위험한 독서의 해>는 엄밀히 말하면 책보다는 독서에 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지 않고 철저하게 분석해 평론형식으로 끌어가지 않는다. 앤디 밀러의 회고록이자 고백록이다. 자신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솔직한 소감은 어땠는지(그는 <인간의 굴레>를 읽고 쓰레기라 평한 바 있다),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한다.


6. 저자는 아내와 함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는데, 자신은 시큰둥한 반면 아내는 큰 감명을 받았다. 재밌는 것은 이후로 책을 그리 많이 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보다 더 많이 읽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었지만 책 자체에 대한 욕심, 더 많은 책을 쌓아두고 싶다는 욕구를 잃은 것이다. 아내는 어째서 자신들에게 저렇게 많은 다른 책들이 필요한 것인지 반문한다.


7.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책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일터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책을 사는 행위 자체와 책의 내용 습득을 혼동한다.


8. 이는 중요한 쟁점이다. 독서가 유익하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시간은 짧고 읽을 거리는 많아서 많은 책을 욕심낸다. 다독이 미덕이 돼고 속독은 물론이거니와 한번에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초의식 독서법이 유행한다. 허나 저자가 생각하는 바로는, 유행에 따라 열광적으로 책을 읽으려는 최근 우리의 욕구로 인해 독서의 가장 큰 두 요소인 인내와 고독이 위기에 처했다. 천천히 읽고 생각의 진화가 느려도 안에서부터 벅차오르는 독서를 권한다.


9. 덧붙여, 감흥은 어디서부터 올지 모르므로 책이 어려워도 끝까지 붙들고 읽어보라고 말한다. 이는 '재미없으면 덮어라, 어차피 읽을 거리는 많다'라는 독서법과 정확히 반대다. 허나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 던져버리고만 싶은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하나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깊은 사유가 되든 쓸데없는 생각이 되든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읽힌 책이라면 분명 순간순간 뭔가 거대하고 나은 존재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것이다. 아, 그런데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덮어버리면 되지 뭐.


10. 그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면서부터 블로그도 그만두었다. 블로그에 감상을 쓰고자 하면 책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고 초반에 떠올린 개념과 이미지를 책의 나머지, 즉 대부분에 끼워맞추게 된다. 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도 이러한 발상을 블로그에 그럴싸하게 적을 방법에만 몰두해서 진짜 책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의견표명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읽고나서 뭔가 길고 그럴 듯하게 감상을 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마치 이 글을 쓰는 나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가볍게 무시하기로 한다.


11. 목록의 책을 모두 읽은 저자는 독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길 권한다. 목표를 당장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내일의 일이 될 것이고 결국 올해, 내년, 언젠가가 될 것이고, 아마 절대로 목표를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선 책을 꺼내보자. 


12. 위험한 독서의 한 해를 지낸 뒤에 앤디 밀러라는 사람이 어떻게 변했을까. 뻔뻔하게도(!) 그는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더 나은 사람, 더 관대하고 온화하며 지식과 교양이 넘치고 빈정대지 않는 독자가 된 척할 수도 있지만 그건 <위험한 독서의 해>의 에필로그를 교훈이 넘치게 만들 뿐이다. 책을 읽은 후 그에게 온 변화는 적어도 더 이상 책에 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3. 저자는 책에서 소개한 책을 모두 읽으라고 강권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목록은 그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부록에서 그가 만든 인생 개선 도서 목록을 소개한다. 독자가 완전히 초짜일 때 읽기 시작하기에 가장 쉬울 항목이라고 별표를 친 책 중에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소립자>(미셸 우엘벡)가 있다. 이것만 봐도 저자의 독서 내공이 평균 이상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제시한 목록을 참고하되 목록에 매달릴 필요는 전혀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강렬한 독서의지가 불타오르고 우리 마음속 어딘가의 목록을 불러일으키면 된다. 전부터 정말 보고 싶었던 책, 어려워서 중간에 덮어버렸던 책, 남들은 다 읽었다지만 자신은 아직 읽지 못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든 책. 어떤 책이든 우선 펴보자. 이후에 우리의 삶과 시간이 어떻게 변하리라고는 예측할 수 없다. 허나 생각하고 깨닫는 독서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경험을 주기에 항상 이롭다. 계속 읽겠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먹을 수는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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