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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퇴사 대신 공부를 결심했다

양손잡이™ 2017.02.02 10:00

  입사할 때부터 느꼈지만 이놈의 회사는 직원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책과 영화를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만의 취미로 전락시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매일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달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겨울 휴가 기간에 가족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라는 문구가 쓰인 카드를 화장실 소변기 위에 자랑스럽게 걸어 놓은 것부터 어이가 없다. 과격하게 말하면, 역겨울 따름이다. 평소에는 소처럼 일하고,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은 휴가 때나 만들라는 무언의 주문처럼 읽힌다.


  덕분에 사람들의 취미는 줄어만 간다. 온전히 자신에게 쓸 시간이 모자르니 순간의 흥미를 위한 취미가 대부분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에 길들여진 우리는  휴식이 주어져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것이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남들을 따라 하고 말초적인 재미를 끊임없이 찾는다.


  나도 점점 이렇게 변해갔다. 회사 입구를 들어간 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매일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자리에 앉아 퇴근시간만 기다린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낸다. 군 제대 후 쭉 이어오던 1년에 책 100권 읽기는 입사 2년 차에 벌써 무너졌다. 올해는 30권을 겨우 넘겼을 뿐이다. 추천할만한 책도 없는, 비루한 기록만 남았다.


  회사와 관련 없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독학의 의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교과서와 함께 싸그리 날려버렸으니 어디서 배우기라도 해야 할 텐데 시간을 내기 어렵다. 24시간 계속 가동해야 하는 공장 특성상 교대근무는 필수여서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강좌를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평일 강좌는 언감생심이다. 주말마저도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심지어 1년 반 동안 회사에서 소속이 5번 바뀌었다. 변화를 싫어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짧은 기간에 이런 변화는 큰 스트레스였다. 변화도 변화지만, 내가 빠져도 이전 부서는 특별할 거 없이 잘만 돌아가는 것도 슬프다. 대기업 직원은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는 말은 전부터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뼈저리게 다가올 줄은 누가 상상했으랴. 게다가 옮긴 부서는 업무가 많아 퇴근시간도 늦으니, 가뜩이나 부족했던 내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여러 생각이 겹치니 자연스레 퇴사가 머리에 맴돌았다. 그래, 감옥 같은 회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꿈을 찾아 모험을 하는 거지. 퇴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예전과 현격히 달라졌다. 심지어 퇴사가 요새 트렌드라는 말까지 나온다. 같이 부서 이동한 사람들, 다른 부서로 간 사람들, 각자 부서에서 꾸준히 일해오던 친구들과 퇴사를 얘기해보았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출근도장을 찍는 느낌을 준다. 요새 취직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인들이 안 힘든 건 아니다.


  회사를 나가면 뭘 할까. 6개월 정도는 그동안 못 가본 여행을 떠나야지. 타지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자유를 만끽하자. 여행에서 돌아와 당분간은 취업 생각은 접어두고 치열하게 살지 말자. 아침햇살을 쬐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자고, 잠에서 깨면 다시 책을 읽자. 꾸준히 글쓰기도 연습해서 나만의 작업물을 만들어야지. 인문학 강좌도 들으면서 나를 바꿔가야겠어.


  올해 보너스만 받고 정말 나가자고 생각했다. 허나 퇴사를 한번도 하지 않은 나라도 현실의 벽이 녹록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당장은 돈이 있더라도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애초에 좋아하는 걸 하려고 나왔던 회사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들어가는 모순이 생긴다. 현실은 언제나 꿈을 압도한다.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서 헤쳐나갈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좋은 직장이 있다고 한들 그 회사에서 뭘 보고 나를 채용할까? 회사에서 나가면 나를 써줄 곳이 없다고 매번 한탄했는데, 그건 내게 강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이다. 미련하게도 그런 강점을 얻기 위해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이 힘들다, 회사의 톱니바퀴로 일하는 느낌이 들어 괴롭다, 이런 푸념은 제 얼굴에 침뱉기나 마찬가지다.


  월말에 따박따박 입금되는 월급에 만족이 드는 순간 깨달았다. 웬만한 용기 아니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용기는 없다.


  냉정히 생각해 퇴사는 무리다. 돈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돈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여태까지의 삶이 있기에 쉬이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까. 내린 결론은 결국 자기계발뿐이었다. 예전에는 자기계발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이제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집합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을 꼽았다. 책 읽기와 글쓰기. 두 가지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여러 고민을 했다. 책은, 지금까지 흥미 위주로 읽었다면 조금 무겁게 읽으려고 한다. 재작년부터 읽겠다고 한 <안나 카레니나>를, 책을 산 지 무려 4년 만에 책상에 꺼내 두었다. 많이 읽기에 중점을 두었던 독서에서 적게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겠다.


  글쓰기는 우선 매일 쓰기부터 연습하고 있다. 나로서는 기특하게 3주째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다.(이 글도 그동안 쓴 일기의 조합이다. 쓰다 보니 괜스레 무게 잡는 이야기가 많아졌지만 말이다) 1월에는 온라인 서평 쓰기 수업을, 2월부터는 100일 쓰기 수업을 듣는다. 그동안은 발췌문으로 가득한 독후감을 써와서 내 글이 없었다. 글쓰기 근육을 조금씩 늘려 2017년에는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글을 하나 쓰고 싶다.


  혼자 공부하는 건 조금 힘들기도 해서 아예 타의로 공부할 방안을 마련했다. 경희사이버대 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 학부는 후마니타스, 전공은 인문고전이다. 업무와 정반대로 동떨어진 공부다.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가 인문학이기에 딱 하루 고민했다. 대학을 졸업했기에 3학년 편입이 가능했지만 과감하게 신입학을 선택했다. 무려 4년의 대학생활이 다시 시작된다. 회사생활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용기가 없는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최상의 절충안이다.


  이 계획들은 흔히 말하는 성공과 대박을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마음의 수양이다. 더불어 다른 이들을 알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인간의 학문이라는 인문학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달, 100일, 4년이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 끝이 큰 성공이 아니어도 좋다. 전환점을 통과하는 과정 자체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가열차게 빛날 순간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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