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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잡담 - 독서법을 바꿔야 할까봐

by 양손잡이™ 2017. 2. 2.

이번주 일요일에 떠나는 제주도 힐링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가야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어제는 문학, 과학, 철학, 사회, 인문... 분야를 나눠서 골랐는데, 막상 어떤 책을 주문할지 고민하니 이 고민이 무한루프에 빠진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어. 사놓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 서점에는 왜 이리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은지. 이 책을 사면 뭔가 문학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식인인 척 하려면 저 책 정도는 사야 하지 않을까. 들고다니면서 자랑하고 인스타그램에 나 이런 책 읽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오, 라고 자랑해야지, 하는 허세만 가득한 독서. 이런 태도가 벌써 7년째다. 겸손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책읽기 방법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다독이 아니라 정독으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싫어했던 이유가, 세상에는 수많은 읽기 방법이 있는데 그의 방법만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이라고 설파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권을 읽더라도 끊임없이 사색하면서 읽어라.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 끝없이 파고들어라. 초등학교 때부터 즐기는 독서로 해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독서법이다. 이 세상에 재미난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책 한권에만 머무른단 말인가?


그런데 남는 게 없네. 그저 읽기만 하는 지금의 독서로는 몸과 마음과 머리에 체득되는 지식이 없다. 지금은 그저 읽어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끔 멋들어져보이는 글귀에 포스트잇을 붙히지만 그걸로 끝이다. 책을 덮고 표시해둔 부분을 다시 펼치면 그것끼리 아무 공통점이 없다.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서로 상응하고 영감을 줘야 하는데, 애초에 읽는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내게 책은 단순히 시간을 떼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불과했다, 가 아닌 이유는 일기를 쓰기 직전까지 손에 들었던 책마저도 위와 똑같은 생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독을 통해서도 충분히 책이 주는 감정에 감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속독가들은 다들 의미가 없어진다. 허나 속독은 그들의 능력이고 무기인 것 같다. 빠르게 읽는다 해도 책이 주는 반짝이는 지점을 잘 캐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것이다.


텍스트를 빠르게 소화시지 못하는 능력도 없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꾸역꾸역 뒤로 넘어가기만 바빠, 책 읽기가 과제인 마냥 마지막 장을 얼른 닿고 싶어 조바심만 내,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주변 사람에게 책을 많이 읽는다, 1년에 몇 권씩 읽는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아무 효용가치가 없었으니까. 독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무가치한 독서를 지향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름 지식의 틀을 갖춰야 소용이 있는가도 싶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을 읽고 다독이 무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역사(또는 작가의 연대기나 평전), 그 시절의 철학을 같이 읽는 게 문사철 독서법의 요지다. 내가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책은 앞뒤로 읽은 그것과 관련이 없었다.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학 서적을 읽다가 뜬금없이 25세기의 우주활극을 읽고, 19세기 프랑스로 갔다가 고대 아테네의 광장으로 향했다. 앞뒤로 전혀 맥락없는 독서를 하니 책을 아무리 읽어봐야 세상이 세상이 전혀 넓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문사철 독서법이란 개념을 접했으니 글자를 읽기 시작한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진짜 읽기를 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런 것이 진짜 다독이라면 나는 다독을 할 짬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깨닫고 나니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천천히 깊게 읽으면 되잖아?


오늘부터는 책 읽기 속도를 조금 줄여보려 한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글씨를 훑는 읽기에서 글씨 한 자 한 자를 탐독하는 읽기로 바꿔야겠다. 300권 가까이 쌓인 책의 탑을,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지낼 친구로 생각하면서.





결국 오늘의 일기도 끝은 허망하다. 고민은 많고 자책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그리고 결론은? 알라딘 장바구니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담았다. 2013년 1월에 읽었으니 정확히 4년만이다. 그러고보니 공부한다고 해놓고 신나게 자기계발서를 사고, 독후감 쓰기 연습한다고 독서와 서평에 관한 책을 사고, 이제 독서 방법을 바꾼다고 그에 관한 책을 산다.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하려고 티내는 이런 모습부터 버려야 하는데 잘 안된다. 천성이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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