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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



  이 책은 아주 쉽다. 100쪽이 채 안 된다. 어려운 글 하나 없고 성내는 말 하나 없다.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곤조곤 말할 뿐이다. 옮긴이 말마따나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책 자체가 워낙 짧을뿐더러 모두 갈무리해도 좋을 책이라 발췌문만 남긴다. 발췌문만 봐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리라 다 이해가 간다. 조곤조곤 말을 걸어주고 일상에서 남성이 느끼지 못하는 일들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화내지 않고 말한다. 아직 페미니즘을 잘 모르지만, 우리를 페미니즘으로 이끄는 데는 이 책이 제격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테드(TED) 강연을 바탕으로 쓰였다. 책 읽는가 조금 힘들다면 영상을 추천한다. 책과 영상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hg3umXU_qWc


(위 링크를 눌러 들어가면 자막 없는 영상이 바로 뜹니다. 유튜브 앱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을 검색하셔서 저자의 강의 영상으로 들어가시면 한국어 자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의 주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 (11, 12쪽)


(선략/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말하면 저자가 유쾌하게 반박하고서)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16쪽)


  (선략/남동생 루이스는 지금 시대에 여성인권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후 둘이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한 남자가 주차 공간을 찾아준다) 남자의 유달리 연극적인 몸짓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남자에게 팁을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손을 넣어 돈을 꺼낸 뒤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넨 돈을 기쁘고 고맙게 받은 뒤 루이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루이스는 놀라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왜 나한테 고맙다는 거지? 내가 돈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루이스의 얼굴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내가 가진 돈은 무엇이든지 결국에는 루이스에게서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남자이니까요. (19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런 여자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에게 욕구가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여성이 됩니다. 가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 됩니다. (37쪽)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욱,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3, 44쪽)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52쪽)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왜 오늘날 새삼스레 페미니스트 선언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책이다. 더구나 그 선언을 더없이 다정하고 유쾌하게 말한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연령의 사람에게든 일말의 껄끄러운 마음 없이 선뜻 건넬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어느 성의 사람에게든. (91,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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