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22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읽고 반했는데, 소설집이 있다는 걸 알고 냉큼 읽었다.
소설집 안의 단편들은 두 가지의 소재로 분류된다. 상실, 그리고 기록. 이번 독서노트는 문장을 길게 늘여놓기보다는 단편이 풍기는 분위기를 짤막하게 메모해본다.
1. 상실.
‘다이버’, ‘폭수’, ‘아일랜드’에서 아주 진하게 느껴지는 상실과 이별의 이야기들. 모두 아버지가 자식을 잃는 이야기다.
상실의 끝에는, 슬픔을 뒤따라 가거나(‘다이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거나(‘폭수’), 슬픔에 동화되어버린다(‘아일랜드’).
소설의 끝에서 인물들은 슬픔을 이겨내는가 싶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새드엔딩이다.
2. 기록.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일반소설이라기보다는 장르소설에 가깝다. 종이책이 금지된 세상에서, 종이와 기록을 지키려는 이들의 투쟁을 그린다. 작가의 장편소설 <비블리온>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다음으로 읽어봐야겠다.
3.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표제작이자, 인상 깊게 읽은 단편. 다시 읽어도 참 좋다. 상실과 기록이 한데 어울려져 묘한 감정이 드는 글이다. 상실을 겪은 이는 그 사건을 다큐로, 소설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그에게 객관과 주관은 따로가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편 속 ‘나’는 소설가로서, 또 학자로서 자신이 겪은 슬픔을 빈 종이에 기록하기로 한다.
경험을 소설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을 논문으로 만든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애초에 소설과 논문은 같은 영역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 둘이 같은 차원(글쓰기)이기는 하다면 경험은 아예 다른 차원(실재)의 일이니까. _198쪽.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극중 등장하는 일본인 친구 ‘아야’는,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로 ‘아프다’는 뜻이라고, 다른 이에게 들었다. ‘나’는 ‘아야’가 한국어 모음의 시작이라고 말해준다. 우리가 겪는 아픔은 아야, 하는 소리로 끝나는 게 아닌, 거기서 파생되는 새로운 이야기, 또는 사회적 토론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4. 문장과 소설 구조가 다소 거칠고 성기나 직설적이어서 오히려 좋았다.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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