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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우리가 나눈 단어들 - 달과돌 (독립출판물, 2018)

by 양손잡이™ 2023. 2. 2.

요새 자주 가는 독립서점에서 산 독립출판물이다. <언어의 온도>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독립출판으로 시작해서 한참 잘 팔린 책이었는데, 혹시 <우리가 나눈 단어들>도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내가 그 가치를 빨리 알아본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라는 흑심을 품지는 않았고, 책장에 예쁜 책이 많아서 둘러보다가 표지와 제목이 눈에 띄어 펼쳐보았다. 책은 커플인 남녀 '달'과 '돌'이 같이 썼다. 소설, 카페, 책방, 떡볶이, 사진, 시, 노래방 등 일상에서 별 의미없이 지나보내던 단어를 두고 서로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글이다. 둘 다 국어교육과 출신이어서인지 글을 상당히 잘 쓰는 편이다. 돌(정황상 남자인 듯하다)은 소설까지 쓴다고 한다.

 

편지처럼 서로 주고 받은 글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어서 상대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겼다. 직접적인 표현이 많지 않아서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다소 담담하고 담백하게 글을 썼다. 적당히 말랑말랑해서 읽기 편안한 책이다. 난 달의 글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돌은 기승전'너와 함께여서 좋았다, 너와 함께하고 싶다'여서 형식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산문으로서 수준은 아주 높지는 않다. 번뜩이거나 곱씹을 만한 부분은 많지 않다. 그래도 재밌게 읽은 이유는 삶의 태도나 방향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돌은 '소설'을 말하면서

 

문학이 좋아서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다. 정확히 말해 소설이 좋았다. 시를 좋아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때 나에게 문학은 소설로만 설명이 가능했다.  _8쪽

 

란다. 이에 달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책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와닿는 문장이다.

 

(전략) 그리고 이야기를 좋아하면서 쓰기도하는 너를 만나 연애를 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일 수 없다고 했던 너의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어리석음과 너의 연약함을 쓰다듬으며 지내고 있다.  _16쪽

 

두 저자가 사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을 몇개 더 뽑아보자면

 

'빨간책방'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너한테 해 버렸다. 의욕으로 가득찬 초대 손님 마냥 말을 많이 하고 그날 밤에는 잠을 설쳤다.  _49쪽, '라디오', 돌 쓺

 

편하고 좋은 술이었던 맥주에게 내가 조금 과감한 표현을 써 보자면, 그래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의미부여를 해 보자면,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너의 앞에 착륙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너 역시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가까워지던 시간을 떠올려 보자. 그때에 맥주가 얼마나 자주 함께 했고, 또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해 보자.  _181쪽, '맥주', 돌 쓺

 

무모하고 눈치가 좀없었고 고독했던 날들에, 맥주를 마셨다.  _186쪽, '맥주', 달 쓺

 

달이 '음악'을 이야기하면서(152쪽) 소개한 노래를 들으면서 이 책이 퍽 마음에 들게 됐다. 인디 밴드 'O.O.O'의 '밤과 마음', 'CHEEZE'의 'Mood Indigo'는 요새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한참 무한반복 중이다. 기성출판물이 보여주지 못하는, 사사로운  일상 에세이로서의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나도 나중에 이런 프로젝트를 해봤으면 좋겠다. 달과 돌처럼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쓰지는 못해도, 글 잘 쓰는 재능은 없어도 서로를 향한 애정만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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