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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그곳은 고독하다 - 화성 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by 양손잡이™ 2011. 9. 8.
화성 연대기 - 10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샘터사


  블로그에 리뷰를 쓴 책 중 별 다섯 개를 준 게 있던가요? 겨우 13권이지만,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벤트에 당첨돼 이 책을 공짜로 받은 건 정말 행운이에요. 책을 받은지 6개월만에 읽은 책이지만...

  전에도 썼었지만, 제게 SF는 진입이 어려운 장르입니다. 그러니까, 본격 과학 소설은 말이죠. 멜로가 많이 섞인 「별의 목소리」(알아요, SF쪽은 조금 아닌 거)라든가, 스타워즈 같은 우주활극. 이런 게 재밌죠. 아무리 흥미진진하더라도 복잡한 과학 얘기가 나오면 책은 덮지 않겠지만 얼른 페이지를 넘기고 만단말이죠. 그러면 그 재미가 조금 줄어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책이 재밌다는 겁니다. SF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는 하드SF보다는 SF에 서정성과 문학성을 가미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화성 연대기는 복잡한 과학상식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제가 기억하는 과학이라고는 화성, 화성인, 그리고 화성으로의 이주하는 지구인, 딸랑 이것 뿐이네요. 어때요, 쉽죠?

  화성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 화성이 주무대입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 볼수록 점점 익숙해지죠. 책에 빠져들어서일까요? 물론 그것도 한 이유겠지만, 점점 장소가 지구처럼 느껴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6개월이 지나자, 벌거벗은 행성 위에 열두 개의 작은 마을이 세워지고 뜨거운 네온등과 노란 전구들이 마을을 가득 메웠다. 모두 합쳐 9만여 명이 화성으로 왔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었으니... (181쪽)



  화성으로의 탐사를 마치고, 지구인들은 본격 화성이주를 시작합니다. 처음엔 황무지였던 땅이 점차 초록빛 나무로 뒤덮여가고, 우리 지구인들이 살기 편한 환경으로 변해가죠. 그러면서, 원래 살던 화성인들은요? 지구인들이 죽였던가, 자연스레 없어졌던가? 기억이 확실하진 않네요. 쨌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이때문에 제가 이곳은 지구일까, 라는 의문이 든거라니까요. 마치 과거의 미지대륙을 탐험하는 서양인의 역사가 펼쳐진 느낌이 듭니다. 아마 첫 탐사대는 토착민들에게 배척당했겠죠. 처음엔 그들을 쫓아낼 수 있었으나 가면 갈수록 이는 힘들어지고, 결국은 자신들이 쫓겨나가는, 역사의 지고불변한 법칙.

  역사 같은, 잘 모르는 항목은 제껴두고, 텍스트로 돌아가보면 말이죠,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공포와 고독이 처절하게 느껴지도록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 눈앞에서 그는 계속 모습을 바꾸었다. 톰, 제임스, 스위치먼이라는 이름의 남자, 버터필드라는 남자. 시장, 주디스라는 소녀, 남편 윌리엄, 아내 클래리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모습이 만들어지는 녹은 밀랍이었다. (290쪽)



  아무도 오지 않지만, 곧 인파가 들이닥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고속도로에 핫도그 가게를 차린 남자, 장사가 잘되면 더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주유소 할아버지,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는 남자(여자?), 지구인들의 향수를 가지고 환상을 만드는 화성인들.

  여튼 마지막까지 눈을 못 때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단편이어서 더욱 몰입도도 높았구요. 마지막장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물 속에 잠긴 화성인이 과연 누구일까요. 혹시 우리는 아닌지.

(2011년 1월 30일~ 1월 31일,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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