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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스릴러의 정석 - 폐허 (스콧 스미스)

by 양손잡이™ 2011. 9. 15.
폐허 - 10점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비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스콧 스미스의 '폐허'입니다. 아니, 사실 책 좀 읽으신다~하는 분들은 다 아시던데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전에 '심플플랜'으로 접했던, 그 스콧 스미스입니다. 하지만 요놈이 훨씬 재밌군요.

  제가 원래 공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신 나오는 영화도 못 보고, 그 명작이라던 게임 '화이트데이'도 못했습니다. 영화 '사일런트 힐'을 TV에서 틀어주는데, 너무 무서워 도중에 TV를 껐답니다. '링'은 오죽하겠어요. 제가 생긴 거와 달리 속은 여린 남자라서요, 뭐든 깜짝깜짝 잘 놀라거든요. 예전에 MBC에서 방영해준 드라마 '거미'를 보고, 당시 방바닥에서 자던 저는 침대와 방바닥 사이의 틈에서 거미들이 튀어나와 저를 물면 어떡하지, 잠을 잘 못 들기도 했답니다.

  제프, 에이미, 에릭, 스테이시는 여름에 멕시코로 놀러갑니다. 거기서 마티아스라는 독일 남자를 만났고, 그가 동생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듣죠. 마티아스의 동생 헨리히는 일전에 만난 미녀(?) 고고학자에 혹해 그녀를 따라갔다는군요. 마티아스는 그런 동생을 쫓아가 다시 집으로 오려고 하고, 그런 마티아스를 제프가 도우려합니다. 제프의 설득으로 나머지, 에이미, 에릭, 스테이시도 그 모험에 동참합니다. 여행 도중 사귄 그리스인 세 명 중 하나인 파블로도 곁다리로 낍니다. 파블로는 나머지 두 그리스인에게 자신이 가는 목적지의 지도를 남기고, 호텔을 나섭니다.

  이렇게 여섯은 굽이굽이 지도를 따라 가고, 정글에 들어갔지만 잠시 길을 잃습니다. 그러던차에 마야인의 부락에 들어서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다시 여섯은 길을 헤치고 나오다가, 야자잎으로 숨겨진 샛길을 찾게되고, 공터를 발견합니다. 뒤늦게 쫓아온 마야인은 얼른 그들을 쫓아내려하지만, 에이미가 사진을 찍으려다가 발로 덩굴을 건들게됩니다. 이때부터 마야인은 태도가 돌변하고, 공터 안의 언덕으로 그들을 올려보냅니다.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동생 헨리히가 가슴에 활을 맞은 채로 덩굴 안에 시체로 쓰러져 있습니다. 마야인들은 각각 총이나 활 등을 들고 여섯이 언덕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여섯은 어쩔 수 없이 언덕 위에서 고립된 생활을 맞이합니다.

  이 책은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예전에 스티븐 킹의 '스켈레톤 크루 (상)'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단편으로 씌여 있습니다. 한 호수 위의 보트에 인원들이 갇혔는데, 물에는 사람을 먹어버리는 기름 덩어리가 둥둥 떠다닙니다. 짧은 단편이서 그럴지, 조금 뻔한 이야기이긴 한데 긴장감이 꽤나 돌더군요. 킹은 이 긴장감을 단편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 스콧 스미스라는 작가는 이 긴장감을 500쪽 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거, 있잖아요? 매운 닭꼬치나 매운 닭발을 왜 먹나요? 너무 매워서 혀가 얼얼한데도 그 묘-한 느낌에 계속 젓가락질을 하잖아요? 이 책이 그렇습니다. 책의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 책을 놓고 싶은데, 그게 안되요. 너무 재밌거든요.

  제가 독서마라톤을 시작한 게 2010년부터인데, 이렇게 손에서 못 놓았던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장편으로는, 평생 치자면 없습니다. 아직 독서량이 적어서 다른 책들과 비교하기 힘들지만, 여튼 그 정도입니다. 긴장감의 왕입니다. 흠, 이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못 끊는 걸까요?

  글을 쓰려면 이처럼 써야하는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낀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기를 쓸 때조차 문장이 뚝뚝 끊기고 별 내용도 못 적고 펜을 놓기 일쑤인데, 스콧 스미스는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냅니다. 폐허라는 좁은 공간 (뭐, 폰 부스에서도 영화를 찍는 판에...)에서, 겨우 5일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이런 글을 쓸 수 있군요. 참, 대단한 작가입니다. 제가 간혹 락밴드나 합창단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지만, 책을 읽다가 "와 시X, 진짜 짱이야!"라고 외친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아마 마지막이기도 할 거구요.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 나는 절대 정글에는 안 들어갈테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제프의 각종 이론적 생존 상식 따위도 필요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프는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불을 피우기 위해 태우면서, 읽은 기억은 있지만, 내용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네, 죽을똥 말똥 하는데 문학적 위안은 무슨. 살려면 죽은 친구 시체 정도는 먹어줘야죠, 네네.

  ruins가 폐허로 번역이 되었으나, 잔해로 생각해도 별 지장은 없을 듯하네요. 읽다보면 이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웃 블로거 분들께 들은 얘기로는, 이 스콧 스미스라는 작가는 책을 발간하는 주기가 아주 길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이지요, 자칫하면 저는 스콧 스미스에게 중독되었을지도 모르니.

(2011년 2월13일 ~ 2월 15일, 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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