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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독서 노트

손바닥 수필 - 최민자

by 양손잡이™ 2012. 4. 16.
손바닥 수필 - 10점
최민자 지음/연암서가



042.


  저에게 수필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참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이기에 접근하기 쉬워보이지만 쉽게쉽게 쓴다고 글을 내려적다 보면 결국 쓰레기가 되곤 하지요. 아아, 좌절. 물론 방법론 이전에 의식이 문제지만요. 예전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면, 이제 꿈은 '내 이야기를 온전히 쓰고 싶다'로 바뀌었습니다. 절대 파이가 작아진 게 아니어요. 오히려 더욱 깊어진 거지요.


  수필과 일기, 낙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항상 고민하지만 항상 난항에 빠지고 좌절하고 말지요. 소설은 신변잡기적인 글을 쓰면 안 된답니다. 그렇다면 수필은? 수필 역시, 형식은 매우 자유롭지만 잡담을 쓴다면 그저 그런 낙서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세심한 관찰력이 없다면 글은 그저 허세 가득한 글자모음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인 것 같습니다.


  제 글쓰기의 마지막 꿈이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였는데, 과연 이 꿈을 제대로 세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저런 문장을 앞세운 건 아닌지. 때론 자만에 잔뜩 취해 고개를 한껏 쳐들다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하며 머리를 쥐어싸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하긴, 글쓰기는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사실을 잊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 몇 번이고 타고 말지요.


  저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참 바보처럼요. 아니, 노력이 아니라 시간 낭비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수필을 쓰려면 수필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 작법서만 신나게 쳐다보고 있었지요. 이렇게 쓰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어, 저렇게 써야 제대로 된 묘사야, 이게 바로 공감각적 표현이지. 방법을 알면 글 쓰는 게 쉬워질 줄 알았지요. 하지만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더군요. 제길.


  그런 면에서 <손바닥 수필>을 접한 나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폭신한 양장본 표지에 앙증맞은 크기, 하늘을 향해 마음의 창을 활짝 여는 듯한 표지그림까지, 정말 너무 멋진 책이더군요. 물론 단순히 모양 때문에 책이 사랑스러웠던 건 아닙니다. 수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지요? 일상의 작은 편린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감정이 과잉되지 않게 담담히 써내려가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것은 시계가 흔해지고 나서부터다. 시계는 시간 도둑, 시간의 천적이다. 시간을 계량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훔치고 잡아먹는다. 시계들이 기하급수족으로 새끼를 쳐서 부엌에도 책상에도 손목 위에도 크고 작은 변종들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거다. 먹잇감은 일정한데 개체수가 증가하니 모자라 아우성을 지를 수밖에. (49쪽, '시간도둑'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상들을, 배배 꼬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 다르게 봄으로써 그것들은 생각한 이에게 의미를 가진 것이 되겠지요. 그럼으로써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다들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글쓴 이 최민자 씨의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서, 저자의 푸근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왠지 여기저기 주름도 패어 있지만 그 주름이 단순한 세월의 흔적은 아닐 듯싶습니다. 엽편 또는 장편이라 불리는 분량의 짧은 글로 구성된 책입니다. 어느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무 페이지나 쫙 펴서 읽어도 너무나 좋을 책이란 걸 직감합니다. 책을 덮고나니 푹신한 표지가 손바닥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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