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의 숲에서 꿈을 찾다 - 방누수(일열) 지음/인더북스 |
사실 저는 책을 소개한는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싫어한다고 말해야 옳을까요? 특히 소개하는 책이 주로 문학이 된다면 더더욱 싫어합니다. 그 긴 장편 소설을 단지 네다섯 장에 요약해버립니다. 이게 단순한 스토리 소개로 끝났다면 거기서 그치겠지만, 게으른 사람은 겨우 그 다이제스트를 읽고 '아 이 책, 읽었지' 하며 책은 펴보지도 않습니다. 책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안다는 오만함, 그게 참 싫습니다. 아무리 요즘이 효율성을 따지고 시간을 아끼자는 시대이긴 하지만 단순히 이야기 얼개만 파악한 독서는 영 탐탁치 않거든요. 게다가 원래 책의 저자 의도를 읽는 사람이 날 것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책을 소개하는 책의 저자(뭔가 말이 이상하지만 그냥 넘어갑니다)가 원작자의 의도가 이럴 것이다 하고 한번 눈과 뇌의 필터를 거쳐 말하기에,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닙니다. 책을 읽은 후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여러 의견을 모아야지, 먼저 '이럴 것이다' 하는 추측성 의도를 접하고 책을 읽으면 사고는 너무 고착화됩니다.
하지만 그건 문학에서의 이야기이고, 비문학이나 실용서적에 들어오면 조금 다릅니다. 저번에도 누차 말했듯이 독서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정독, 통독, 속독, 간독, 발췌독 등이 있는데요, 문학과 다르게 비문학은 간독과 발췌독이 가능한 분야라고 합니다. 책의 모든 내용을 읽지 않고 내가 필요한 부분, 즉 수많은 예시는 모두 제외하고 굵직한 주장만 뽑아서 보자는 주장이지요. 어느 정도 공감은 합니다. 사실 쓰잘데기없는 예시를 나열해 책 한 권을 출판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사실 그 많은 예시가 저자의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데 쓰이긴 하겠지만 그걸 읽지 않아도 우린 저자의 뜻을 잘 알잖아요. 똑똑하잖아요 여러분은.
그렇기에 이 책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류대성 선생님께서 쓰신 <청소년, 책의 숲에서 꿈을 찾다>라는 책에 이어 비슷한 제목을 달고 출판된 책입니다. 앞의 책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정말 재밌습니다. 저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열심히 책을 읽는 편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소개된 책 중 딱 두 권밖에 읽어보지 않았더군요. 절반이 넘는 책을,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참 시야가 좁게 살아왔던 거죠. 맨 앞 장(자서전) 빼고는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인문서, 교양서이기에 발췌독이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발췌독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네요. 굵직한 예시를 몇 개 들어주고 저자의 의도나 책이 위시하고 있는 주장을 적었습니다.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생각해볼 점을 던짐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필터를 한 번 거쳐 쓰인 생각이기에 이 역시 무조건적으로 믿으면 안 되겠지만요.
저는 나이로는 청소년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뛰었습니다. 아,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책이 많구나, 접하지 못한 세계가 많구나, 많이 모자라구나, 하면서 말이죠. 조금 열등감이 들면서도 기뻤습니다. 모르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 그건 모르는만큼 내가 알 수 있고 성장할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름의 즐거움, 무지의 즐거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책과 함께, 당신이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숲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 믿지는 마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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